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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29. 2023

여름 밥상 차리다 문득

샐러드와 감자전

아침 식탁에서 여러 색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다고 요란스럽게 음식을 준비하고 싶은 열정은 없다. 단지 있는 것들을 잘 꺼내놓는 정도로만 만족하고 싶은 날.     


지금의 상태에 맞는 건 샐러드였다. 더운 날 불을 가까이하지 않아도 된다. 적당한 크기로 썰고는 알맞은 소스를 만들어 주면 부담이 없다. 파프리카와 방울토마토, 생치즈, 상추, 초당 옥수수를 꺼냈다.   

  

야채들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두고는 다진 마늘과 잘게 다진 양파, 올리브유, 발사믹, 꿀과 양조간장 조금을 섞어서 소스를 만들었다. 그라탱 그릇에 샐러드 재료를 담고 소스를 뿌렸다.     


감자전 역시 간단한 조리법을 택했다. 보통은 감자 껍질을 벗기고 강판이나 믹서에 갈아서 윗물을 버리고 부쳐내지만, 아침에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오롯이 감자만을 얇게 썰었다. 감자에 소금을 조금 뿌리고 밀가루 옷을 살짝만 입힌 다음 달걀 물을 입혀서 부쳐내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감자 두 개를 가지고 한 접시를 만들었다. 하지 무렵의 감자는 검증된 맛을 자랑한다. 그릇을 꽉 채운 전은 은은한 노란빛의 다정한 분위기다.   

  

여름날 과수원 한편에서 축제를 여는 듯 하루가 다르게 커가던 채소들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였을까? 소나기가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을 즈음 상추를 따고 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갔던 텃밭은 생명이 활짝 꽃 피우고 있었다.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여름에는 상추와 풋고추를 상에 올려야 할 것 같다. 여름은 초록이 주인공이라고 주장할 만큼 강렬한 색이지만 그 밖에도 빨강과 노랑, 보라 등 자연의 색이 춤춘다. 

 

샐러드와 감자전이 주인공이 된 밥상을 보낸 지가 며칠이 흘렀다.  여느 때처럼 로컬 푸드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걸어오는데 문득 스쳤다. 혼자 차렸다고 생각하는 밥상은 절반은 내가, 또 다른 반은 농부의 몫이었다. 


습한 날씨에 비가 금방이라도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은 날이다. 밥상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는 이웃을 보게 되었다. 크게 보면 자연의 활동이고 다른 의미에선 농부의 일이었다. 이런 마음이 미치는 것을 꼼꼼히 들여다보니 밥상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로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도움받는 것. 밥상을 차리는 일은 그렇게 시작된 이름 모를 이들과의 소리 없는 대화였다. 이틀 전 저녁에 내린 비가 지난해 장맛비와 맞먹는다는 뉴스가 눈에 들어오는 날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돌보았는지 농부의 밭에서 키운 것들이 우리 집 식탁을 지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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