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Jul 04. 2023

여름 가지전

대충 만들어도 맛있는 계절 식탁

여름 식탁은 즉흥곡을 닮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떠오른 느낌이나 분위기대로 흘러간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지만 매일 다르다.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들이마신 다음 냉장고 문을 열었다.     


며칠 전 사둔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매번 가지를 볼 때마다 강렬한 검보라색에 끌린다. 여름 가지는 빛이 최고조에 이르는 듯하다. 차가운 물에 한번 씻고 나오면 가지의 겉면에 살짝 맺힌 물방울과 뽀드득거리는 상쾌함은 아침기운과 닮았다.     


어린 시절 엄마의 가지 반찬은 살짝 찐 다음 간장 양념을 버무린 나물이거나 기름에 고춧가루와 온갖 채소와 함께하는 볶음이 주를 이뤘다. 내가 만드는 가지요리 중 여름에는 단연 전이 중심이다.     


강하지 않으면서도 고소하고 맛있게 가지를 먹을 수 있다. 조리법 또한 간단해서 부담 없이 만든다. 가지를 원하는 모양으로 썬다. 주로 어슷한 둥근 모양을 선택한다. 살짝 소금을 뿌려준 다음 밀가루를 조금 뿌린다. 마지막으로 달걀 물을 입혀주고 기름을 두른 팬에서 부쳐내면 된다.   

  

아침 식탁은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이 항상 만난다. 호두 멸치볶음과 진미채, 열무김치가 어제저녁에도 올랐는데 이날도 함께다. 가지전은 그동안 잊고 있었다. 밥때가 다가오면 먹을 게 없다며 고민하지만, 사실은 생각해내지 못해 묻혀 버리는 요리가 많다.


계절마다 찾아오는 친구처럼 한 시절을 즐겁게 하는 음식들이 있는데 자꾸 깜박한다. 가지전도 그랬다. 여름이 되었다 싶으면 가지전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식탁에 올랐다. 물컹한 가지나물은 싫어하지만, 가지전의 고요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은 아이들도 좋아한다.      

아침 가지전 

같은 찬으로 꾸며진 식탁은 별 기분을 전하지 못한다. 무엇이든 어제는 없던 것이 올라와야 한다. 이상하게도 전날 만든 음식은 아침이면 활력을 잃어버린다. 채소의 색은 바랬고 간은 더 강해졌다. 

     

여름이 좋은 건 대충 만들어도 가볍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 간장에 매실청, 참기름 한 방울 뚝 떨어트린 소스에 초록 채소만 있으면 뚝딱 샐러드가 완성된다. 순간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맛이다.  

  

여름에는 가지처럼 알고 있지만, 기억 속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것을 하나씩 꺼내놓아야겠다. 여름 식탁 노트를 만들어서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 간격을 두고 알고 있지만,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음식들을 만들다 보면 여름이 지루하지 않을 듯하다. 어쩌면 새로움은 익숙한 것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밥상 차리다 문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