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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l 14. 2023

예쁘게 수플레 케이크

지금이 가장 좋은 시절

예쁘게 차려서 먹는 하루를 마음 한편에 놓아둔다. 그리 어려운 게 아니지만, 막상 밥때가 되면 익숙한 방법으로 시간을 보낸다.      


일상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건 반복이라는 의미다. 어제와 다른 것 없어 보이는 날도 분명히 구분되는 하루지만 확연히 알기 어렵다. 그러다 정말 확연히 차이나는 날이 있다. 아이가 아팠을 때다. 

    

새벽에 아이를 살피니 몸이 따끈하다. 열을 재어보니 38도를 넘어선다. 자기 전까지도 아이는 별다른 기미가 없었는데 갑자기 몸이 안 좋다. 단순히 편도가 부었을 것이라고만 짐작했다.     


아침이 되어서도 열은 그대로 오르락내리락한다. 아이는 목은 별로 아프지 않다고 했다. 순간 스치는 건 코로나였다.      


우리 집 막내와 난 코로나를 겪지 않았다. 아이는 가끔 슈퍼항체를 갖고 태어났다고 자랑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집에 있는 자가진단키트로 해봤더니 두 줄이 나온다. 

예쁘게 수플레 케이크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액을 맞아서 그런지 는 몸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다. 학교에 못 가니 심심한가 보다.    

 

날은 흐리고 습도가 최고조에 이른 요즘 같은 때에 격리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겨울이나 봄보다도 답답함이 크게 밀려온다.      


아이를 위로해 주고 싶어서 먹고 싶은 걸 물었더니 수플레 케이크라고 했다. 몇 년 전 익선동 동백꽃이 그려진 카페에서 참 맛있게 먹었다.     


그 후로 가끔 아이는 이걸 찾았다. 달걀흰자로 머랭을 만들고 밀가루와 버터, 설탕과 오일, 노른자에 베이킹파우더를 잘 섞고 반죽을 만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만들어서인지 잠깐 만드는 법을 깜박했다. 머랭과 밀가루 반죽을 적절히 섞어야 했는데 그걸 잘 못 했다.      


조금씩 팬에 반죽을 올리고 나서  남은 머랭을 올려주었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생각보다 잘 부풀지 않은 절반의 성공인 수플레 케이크였다.    

  

아이의 기분을 좋게 해 주기 위해 설탕의 양을 조금 더했더니 맛있다고 잘 먹는다.  케이크 하나를 들어 접시에 담았다.     


다른 것 없이 그냥 먹기에는 아쉬웠다. 집에 있는 블루베리와 플럼코트, 생치즈를 꺼냈다. 수플레 케이크 주변을 이들이 감싸 안았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특별했다. 접시 안에는 내가 잠깐 이루고 싶은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자리를 잡았다.     

내 앞에 있는 한 접시는 내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었다. 타인의 손길로 나를 위해 줄 거라는 기대 대신에 스스로 대접하는 일이다. 한편으론 정말 좋은 시간을 기다리기보다는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는 자기 암시다.  

   

얼마 전까지 별 근심 없는 한때가 좋은 시기라고 기다렸다. 그런 상황이 되어야 내가 편안하고, 좋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소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매일 다른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났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결해야 할 것들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혹은 얼마의 비용을 지급하면 괜찮아지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때로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누구의 말처럼 '지금이 괜찮다'는 말은 '지금이 가장 좋은 시절'이라는 의미였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괜찮아질 거리는 희망에 부풀어 있기보다는 현재를 선택하는 것.   

   

그것은 내 앞에 놓인 접시를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꾸며서 한 끼를 먹는 일과 이어졌다. “맛있다”라는 말을 하면서 포크를 들어 케이크 한 조각을 먹을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었다.     


여름은 어느 계절보다 다양한 색을 식탁 위에서 펼쳐놓을 수 있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감상한다. 천천히 먹으며 내 마음을 살핀다. 깔끔하게 차려진 식탁은 그 앞에 앉은 이의 마음을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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