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Jul 17. 2023

우연한 만남, 들기름두부와 부추김치

새로운 맛을 찾은 날

주방에서 지내다 보면 가끔 뜻밖의 새로운 조합을 만난다. 우연히 생각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잘 어울릴 때가 있다.     


김치통이 비었다. 있을 때는 모르지만 없으면 허전하다. 열무나 얼갈이배추로 하려 했는데 비가 계속 내려 장 보러 가는 것도 마땅치가 않다.    

 

냉장고를 살피다 며칠 전 사둔 부추가 들어온다. 이것으로 쉽고 빨리 김치를 만들기로 했다. 양파만 썰어놓고 즉석에서 버무리면 끝이다.    

 

고춧가루와 멸치액젓, 매실청, 마늘에 갈아놓은 배를 놓고 김치를 담갔다. 부추는 아삭하니 살아있어서 입안에서도 이리저리 힘을 자랑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조용해질 것이다.     


마침 저녁반찬으로 두부를 들기름에 굽기로 했다. 몇 해 전엔가 텔레비전을 보는데 유명 요리사가 들기름에 구운 두부 맛을 전했다. 그 세계가 궁금했다.      

한 번 먹으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는 것. 참기름이나 식용유에 구운 것과는 다른 깊음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 후로 얼마 지나 시도해 보았다. 밀가루 옷을 입히지 않은 채로 약한 불에 팬을 올리고 두부를 가지런히 한 다음 적당량 들기름을 부어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부 익는 소리가 난다. 하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소한데 들기름까지 더했으니 특별해졌다.     


아이들은 들기름 두부를 먹고선 고급스럽다고 했다. 그때 자세히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참기름의 순한 느낌보다는 들깨의 향이 서서히 퍼져나가면서 전해오는 강렬하지만 넘치지 않는 균형 잡힘을 경험한 듯했다.   

  

밥을 먹는 게 지겨운 난 접시에 부추김치 조금과 두부 두 조각을 올렸다. 그것을 한 끼로 하기로 했다.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결국에 별다른 것은 없다. 매일 먹는 것을 다시 찾게 된다.    

 

부추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채소다. 집 주변 돌담밑에는 부추가 무더기로 자랐다. 누군가가 처음에는 씨를 뿌리거나 포기나누기를 해서 자리를 잡았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사계절 만났다.     


쌈장을 만들다 말고 엄마가 잠깐 부엌을 비운다. 손에는 부추 몇 자락이 들려있고 그것을 송송 썰어 넣으며 초록의 향기가 난다.      


어른이 되어서 만난 두부와 부추김치는 단순한 음식의 조화로움을 알려주었다. 딱 두부 두 조각을 먹었을 뿐인데 든든하다.    

  

두부의 부드러움에 부추의 생생함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준다. 종종 밥을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린다.  여름에 나는 초록의 채소들에게 고개를 돌려보면 마음도 더 가벼워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쁘게 수플레 케이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