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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l 26. 2023

자두 부자의 고민

부지런함으로 달콤 맛 찾기

아이들이 과일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집에는 블루베리가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비가 쉼 없이 내리니 장 보러 가는 일도 부담이다. 마트에 있는 복숭아나 수박, 포도도 태양이 그리운 느낌이다. 장마 때는 과일 맛이 덜하다는 어른들의 얘기가 생각난다. 


로컬푸드 가는 길에 노점 과일가게 아저씨를 만났다. 평소에는 아저씨에게 과일을 별로 산 적이 없다. 다른 곳보다 싸서 좋지만, 맛은 보장받기 힘들 때가 많다. 양으로 승부를 건다면 괜찮지만 설탕 같은 단맛이 없으면 찾는 이가 없다. 결국은 시들시들하다가 버려질 때도 있다.  


며칠 전에 동네 과일가게에서 자두 6개를 만 원 주고 샀는데 꽤 맛있게 먹었다.  하나가 주먹보다 조금 작을 정도로 커서 한 손에 가득 안긴 자두는 달콤한 과즙이 흘렀다.     

청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인 자두

아저씨가 내놓은 복숭아와 토마토, 포도 사이에 자두 세 상자가 놓여있다. 지난 기억 때문인지 자두에 자꾸 마음이 갔다. 단돈 만 원이란 가격에 비해서 횡재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상당한 양이었다. 살까 말까 하고 망설이다 물었다.

“아저씨 자두 맛있어요?”

“네 정말 맛있어요. 올해 자두도 비싼데 이 정도면 정말 싼 거예요.”     


검정 비닐 가득 자두가 담겼다. 집으로 오면서도 과일 부자가 됐다는 넉넉함보다는 맛있을까 하는 걱정이 살짝 생겼다. 그런대로 간간이 보이는 붉은색은 잘 익었다는 증거이기에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후텁지근한 기운이 가득하다. 급한 마음 때문인지 장 본 것들을 정리하기도 전에 자두 하나를 꺼내어 씻고는 한입 베어 물었다. 순간 얼굴이 찡그려진다. 기대했던 그럭저럭 한 보통의 맛에 미치지 못한다.

    

순간 아저씨는 맛있다고 했는데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혼자 웃었다. 내 물음에 대한 과일가게 아저씨의 반응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팔 수 있는 건 도로변에서 점포 없이 장사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품질면에서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분명한 사실을 두고도 내가 바라보고 싶은 만큼만 그렸다. 몇 개는 우선 씻고는 설탕을 넣고 조림을 했다. 복숭아 조림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는 낯설었다. 조금 무르면서도 시큼했다. 예뻐 보이는 자두는 사각 통에 종이를 깔고 담아서 냉장고에 두었다. 몇 개는 청을 담기로 했다.     

자두 조림 준비 

아이들이 방학했으니 자두 청에 사이다를 넣고 얼음 몇 개를 동동 띄우면 몇 번은 괜찮은 음료가 될 듯했다. 자두 부자가 되었는데 할 일은 더 많아졌다. 뜻밖의 여름날 자두는 생각지도 않은 과제를 남겼다.    

사람들은 자두를 어떻게 먹는지 살폈다. 어떤 이는 잼을 만들고 청이나 샐러드로 먹었다. 한동안 부지런히 먹다 보면 줄어들지 싶다. 자두를 향한 부담감에 우왕좌왕하는 내가 한편으론 재미있다.  

   

한 걸음만 물러나 바라보면 예견된 일이었다. 제값을 지급하지 않으면서도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는 일종의 공짜심리가 아주 잠깐은 여유를 주었다. 그 후로 내 몸은 바빠졌다. 그러고 보면 절로 되는 건 없는데 말이다.     


아침 운동 후에 냉장고 문을 열어 자두 조림하나를 포크로 콕 찍어 먹었다. 새콤하지만 시원함이 전해온다. 자두에 대한 실망의 날을 며칠 보내고 나니 다음에는 이 정도면 괜찮다는 받아들임이 찾아온다.     


적당한 가격 혹은 조금 비싼 자두를 샀으면 편했을 일이다. 절대적인 것을 보장할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달콤한 맛을 잘 유지할 것이다. 이에 반해 난 저렴하게 샀으니 내 몸을 조금 움직이면 다른 자두의 맛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은가?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결과는 누구나 기다리는 좋은 것을 바란다. 어찌 보면 그렇게 될 것이라 믿고 싶지만, 세상에 그런 경우는 잘 찾아오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쉼 없이 노력하고 정성을 기울여야 원하는 바를 얻을 가능성이 커질 뿐이다.      


자두를 두고도 이런 내 욕심을 만난다.  일상에선 얼마나 현실과 거리가 있는 희망을 키우고 있을까? 별로인 자두지만 눈과 손이 가는 과일로 만드는 노력이 우연을 가장한 행복한 결과를 바라는  것보다는 낫다 싶다. 이 자두를 잘 먹을 방법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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