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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l 31. 2023

성실함과 기다림, 포카치아

매일 먹고 싶은 빵

오랜만에 매일 먹고 싶은 빵을 찾았다. 그 이름은 포카치아. 가끔 브런치 식당에서 샐러드와 함께 나오거나 샌드위치로 만났다.  방학을 맞은 아이가 포카치아가 먹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본 다음 새벽부터 시작했다.      


한여름은 이른 아침을 제외하면 오븐을 돌리는 열기도 부담스럽다. 5시 반 정도에 일어나 바로 포카치아 준비에 들어갔다. 밀가루 250g을 준비하고 미지근한 물과 설탕, 소금, 올리브유를 넣고 반죽했다.     


포카치아는 별다른 노력이 들어가지 않는다. 부드러운 빵으로 향하는 시간을 즐기고 기꺼이 나를 그 공간에 함께 머물러 있게 해 줄 여유만 있으면 된다.      


30분 단위로 돌아오는 반죽을 접어서 다시 발효시키는 과정은 재미있다. 휴대전화 타이머 소리가 울리고, 반죽이 부르는 시간에 나를 맞췄다.   

  

질척한 반죽을 만지기 위해 우선 손에 잠깐 물을 바른다. 바로 옆에 있는 부드러운 반죽을 높이 들어 살포시 떨어트렸다. 그렇게 하기를 4번, 두 시간을 보냈다.     

새벽부터 시작해 완성된 포카치아

겹겹이 반죽이 거미줄 치듯 부풀어 가는 과정이 보였다. 미끄러운 그것을 만질 때마다 한때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던 슬라임 촉감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극강의 부드러움에 빠지는 잠깐이다.   

  

틀에 반죽을 붓고는 마지막 한 시간을 기다렸다. 220도의 뜨거운 오븐에 들어가기 전에 올리브유를 붓고는 양 손가락으로 반죽을 꾹꾹 눌러주었다. 다른 이들이 과정을 보고서 알게 되었지만 기름이 잘 스며들면서 폭신한 빵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토마토를 아주 얇게 썰었다. 사각으로 썰어둔 생치즈도 뿌려주었다. 처음이어서 과연 괜찮게 나올지 궁금했다. 20여 분이 지나니 빵이 다 구워졌다.    

 뜨거운 열기에 기다릴 틈 없이 빨리 맛보고 싶었다. 

“엄마, 그동안 먹었던 빵 중에 최고야.”

한 조각을 입에 넣은 아이가 말했다. 부드러우면서 자연스러운 담백함은 그동안의 것과는 구별되었다. 올리브유의 고소함이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로 밀가루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토마토는 바짝 잘 구워졌다. 빵의 겉면은 마침 한여름의 이글거리는 태양을 연상케 했다. 토마토의 빨간빛이 그러했다. 그 후로 이틀에 한 번꼴로 포카치아를 굽는다.     


세 번째에 이르니 노하우가 생긴다. 매번 어제와 같은 맛을 보장해 줄 거라는 믿음도 쌓여갔다. 그보다 더 매력적인 건 시간을 대하는 내 모습이다.   

  

내게 시간은 그동안 마음대로 해도 괜찮은 것이었다. 해야 할 일이 있어도 오전에 할까 하다 오후나 다음날을 기약했다. 그렇지만 포카치아를 만들 때면 시간을 정확히 지켰다. 다른 일을 하다 듣는 알람은 반가운 음악이었다.


한두 번 반죽을 접고 이어지는 기다림은 먹고 싶은 빵에 다가가는 여행이었다. 반가운 이가 멀리서 우리 집에 찾아오는 기분이다. 느린듯해도 3시간 반이면 만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지루함이 싹트기 어려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모두가 포카치아처럼 만족할 만한 결말이 보장된다면 기꺼이 모두가 뛰어들 수 있다고. 


그렇지만 세상은 그러하지 않은 게 더 많다. 성실히 꾸준히 하다 보면 조금씩 부족한 걸 찾아낼 수 있고 다음에 적용해 보면 어제보다는 괜찮다. 빵을 구우며 하루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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