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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01. 2023

여름 장아찌 생활

채소를 가볍게 즐기는 법

여름을 싫어하지만 여름 빛깔은 좋아한다. 그저 바라볼 때 좋은 것과 그것을 오감으로 느끼며 먹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요즘 같은 시절에 계절을 따지는 게 이상하지만 이때에 빛나는 것들이 있다. 흙을 품 삼아 태어나는 채소와 과일이다.      


맛을 보지 않는다면 그저 감상으로 지난다. 밥상에 오르게 된다면 계절을 맛본다. 빨강, 노랑, 하양, 초록을 경험하고 깊이 들여다보면 감동이다.  일요일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얼갈이와 열무, 알배추를 모아 김치를 담갔다. 이어서 양파와 깻잎, 파프리카와 오이를 넣은 장아찌를 만들었다.     


오이는 빨리 물러지는 씨를 적당히 빼냈다. 양배추와 파프리카, 양파는 적당한 크기로 대충 썰었다. 마지막에는 청양고추다. 뜨거운 날, 음식에는 맵다는 반응이 즉각 올라오는 청양고추가 필수품이다. 과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음식의 맛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군더더기 없이 한 그릇에 집중하게 하는 데는 이것만 한 게 없다.  

   

간장을 붓는 장아찌도 마찬가지다. 준비해 둔 채소 사이사이에 청양고추 썬 것을 두면 간장과 어울려 은은하면서도 정제된 맛을 전한다.  그동안은 간장과 물, 설탕, 식초의 비율을 일대일로 해서 소스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초여름 어느 날에 마트에 갔는데 장아찌용 간장을 큰 폭으로 할인하고 있었다.     

장아찌를 위해 모인 채소들

사두면 언젠가 먹겠지 하는 마음으로 두 개나 가져왔다. 양념 선반에 가만히 두다 이제야 임자를 만났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후다닥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점점 식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넘쳐난다. 손만 움직이면 요리가 가능한 시대다.      


스테인리스 통 가득 담긴 야채를 보는데 절로 싱글벙글이다. 이처럼 예쁜 게 요즘 있나 싶다. 활화산같이 뜨겁게 달궈진 여름에 싱싱한 자연의 색은 신비롭다. 한참을 보다가 간장을 부었다.   

   

간장병에 나온 설명처럼 몇 분 지나 맛을 보았는데 훌륭하다. 아삭함은 그대로이고 적당히 짭조름한 맛은 여름 반찬으로 제격이었다.     


어릴 때는 장아찌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봄에 만들어둔 색 바랜 풋마늘 장아찌 한 조각을 들며 이것만 있으면 여름을 날 수 있다고 했다. 별반찬이 없던 시절이었다. 장아찌는 입맛이 어디로 도망가는 삼복더위에는 귀한 대접을 받았던 찬이다.


그땐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짜디짠 그것을 맛있다고 하는 모습은 이상하다 여겼다. 어른이 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채소가 가득한 장아찌는 짠 듯 하지만 달콤하고 씁쓸하지만 아삭하다.   

  

채소가 제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한다는 점에서 간장 부은 장아찌가 좋다. 한 계절이 지나서 먹는다면 빛바랜 갈색이지만 여름 장아찌는 바로 먹기에 초록이며 빨강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 무심코 밥상을 차리다 파프리카의 빨강과 노랑을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다.      


정신없이 두 가지를 만들었더니 바닥 여기저기 야채 자투리가 돌아다닌다.  다 끝난 다음에 정리해도 괜찮았다. 이런 가벼움은 채소의 태생이 자연이라는 것과 맞물려 있지 않나 싶다. 


오후에 들어서면 저녁까지 에어컨을 켜고 지내야 할 만큼 더위가 사납다. 문을 열면 숨이 턱턱 막혀온다. 그럼에도 시장에 나오는 채소들을 보면 놀랍다. 비가 없는 날이 이상할 정도였던 긴 장마에도 어떻게 저리도 튼튼하게 자랐는지 대단하다.     


여름 채소들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음식을 만들고 식탁에 올리면 이 계절이 지날까. 어제와 다른 음식을 만들 때마다 평범한 내 부엌에서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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