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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02. 2023

더위를 맛있게 먹는 법- 닭개장

계절과 함께 살아가며

날이 덥다. 창밖을 보니 길에 사람이 없다. 시간은 제 속도로 가지만 주부의 시간은 훨씬 앞서 달린다. 아침을 먹었을 뿐인데 저녁 생각이다. 라디오에서 반복적으로 건강을 챙기라는 진행자의 한마디가 떠나지 않고 귓가에 맴돈다.      


슬기로운 여름 나기를 위한 한 그릇을 준비하기로 했다. 모두가 좋아할 만할 것을 고민하다 떠오른 게 닭개장. 닭고기를 푹 삶아 만든 육개장이다. 어릴 때 엄마가 여름이면 종종 만들어 주었다. 어느 영화에서 들었던 대사처럼 음식은 추억을 되새기는 작업인 듯하다.     


갑자기 이것이 먹고 싶어졌다. 남편과 아이를 핑계로 그리운 엄마의 음식을 흉내 내기로 했다. 엄마를 만나고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엄마의 손끝에서 나오는 음식이 그립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식탁에 오르지만, 저녁 시간에 맞춰 시작하기는 너무 늦다. 서늘한 날이면 괜찮지만 요즘 같은 날에는 힘든 일이다.  불 앞에 오래 서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이럴 때 살림의 지혜가 필요하다.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는 오전에 닭을 준비했다. 시간 단축을 위해 압력솥에 닭고기에 대파와 말린 생강, 파뿌리, 청양고추를 넣고 30분 정도를 삶아 두었다. 요리의 9부 능선은 넘은 셈이다. 


한참이나 지난 늦은 오후에 기름을 걷어내고 고기를 꺼냈다. 뼈에서 닭고기만 발라 두었다. 대파와 숙주, 마늘, 느타리버섯을 씻어서 준비해 두었다.     


오후 5시 반을 넘어갈 무렵 마지막 조리에 들어갔다. 마늘을 다진 다음 어슷하게 썬 대파를 냄비에 넣고 식용유와 고춧가루를 더한 파 기름을 만들었다. 뒤이어 아침에 삶아 둔 고사리에 집간장과 마늘을 넣어 조몰락거린 다음 냄비에 넣었다. 닭고기와 맑은 육수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파 송송 닭개장

금세 목 뒤로 땀이 흐른다. 보글보글 소리가 들리자 버섯과 숙주를 넣고 다시 한번 센 불에서, 중간 불로 조절하며 끓였다. 냄비 가득한 그것을 보니 흐뭇하다. 저녁 반찬 걱정은 없다는 단순한 기쁨이 찾아온다. 

 

이 음식을 통해서 더위를 맛있게 먹는다는 마음이 들어왔다. 여름은 언제나 피하고 싶은 계절이다. 복숭아와 수박은 좋아하지만, 눈을 뜨기도 어려울 만큼 강한 햇볕과 뜨거운 기운은 언제나 피하고 싶다. 


닭개장에는 여름 무더운 기운이 잘 녹아들었다.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여름이라고 한다. 일상에서는 이런 날씨가 여러 가지를 망설이게 한다. 그럼에도 여름의 태양은 생명을 단단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과일이 익어가고 벼가 자란다. 엄마가 매일 오가는 과수원 귤도 여름이 없으면 가을의 결실을 기대하기 힘들다. 여름 기운이 닭개장을 통해서 몸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만든 닭개장은 손이 많이 간다. 이런 복잡함은 여름 살림 풍경과 닮았다. 단출해야 좋은 계절이지만 챙겨야 하는 일이 더 많다. 채소나 먹거리를 세심히 관리해야 하고, 집 주변도 꼼꼼히 살펴야 상쾌함을 유지할 수 있다.      


부지런히 움직여 만든 결과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릇에 음식을 담으면 소박하다. 시간과 정성이 꾹꾹 잘 눌러 쌓여 있다는 것. 그래서 더 질박해 보인다.       


뜨거운 여름의 중심에서 열심히 만들었기에 그곳에 나만의 소중한 계절이 머물렀다. 여름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아가는 듯해서 기쁘다. 움직인 만큼 다가오는 느낌들이 있다. 


여름을 핑계로 다음을 기약할 때가 종종 있다. 여름 틈 사이사이를 살펴보면 가능한 시간이 열린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 계절과 이별하기 전에 몇 가지를 더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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