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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10. 2023

떡볶이를 먹는 두 가지 풍경

익숙함에서 만난 일상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어디가?”

“응 떡볶이 재료 사러.”

“떡볶이, 더운데 난 우리 딸이랑 떡볶이 먹으러 가는데.”

오랜만에 위층에 사는 이웃을 만났다. 그는 떡볶이를 먹으러 가고, 난 떡볶이 재료를 사러 동네 마트에 가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맛있게 먹고 와”

일 층에서 헤어지며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그를 보며 나도 시켜 먹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에 머물렀다.      


집에는 배고프다는 아이가 있다.  터덜터덜 가다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마트에서 떡과 비엔나소시지를 사고는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냄비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복잡하게 육수를 내고 이것저것 준비했지만 이젠 간단한 떡볶이를 즐긴다. 아이는 어묵이나 달걀도 필요 없다 한다. 떡과 소시지만을 넣고 고추장을 풀고 마지막에는 피자 치즈를 뿌려주었다.

      

맛을 보니 달콤한 무엇이 필요했다. 설탕 한 숟가락을 넣고 쓱쓱 저으니 꽤 괜찮은 떡볶이가 완성되었다. 텔레비전 앞에 작은 상을 펴 놓고 그릇을 올리자 아이가 얼른 자리에 앉았다.     

점심 떡볶이

“엄마 역대급인데…”

아이는 젓가락을 들고 부지런히 먹기 시작했다. 20여 분이 걸려 만든 떡볶이. 아이는 좋아하는 치즈가 가득해서인지 진심으로 맛있게 먹었다. 그릇 가득했던 떡볶이는 떡 세 개만 외롭게 남았다.    

 

귀찮은 마음에 미룰까 하다 바로 설거지에 들어갔다.  접시를 닦다가 떡볶이를 먹으러 간다는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 끝난 일이지만 살짝 부러웠다. 떡볶이 만드는 게 어렵진 않지만 마냥 편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왔다.  

     

여름 밥상을 차리는 것과 관련해 나름의 원칙을 만들었다. 모든 음식이 내 손을 거치니 가능한 간단히, 복잡한 음식을 꼭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기본적인 과정은 미리 준비해 두기다.  몸에 밴 부엌일이지만 지혜가 필요한 계절이었다. 


그럼 떡볶이는 예외였을까?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때부터 열을 가하는 시간을 나름 계산하고 움직였다. 그런데 아이가 먹고 싶을 것을 묻고 바로 행동에 들어간 과정은 찰나였다. 이럴 땐 본능적으로 익숙한 행동으로 옮겨간다.    

  

일상은 반복되는 습관이 차례로 나열되는 시간이다. 하루의 상당 부분이 음식을 만들고 정리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을 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아이가 얘기했을 때 타인의 손을 거쳐 집으로 배달되는 것은 떠올리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태풍 영향 때문인지 날씨는 다른 날보다 선선했다.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가스 불 앞에 서 있을 때도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식당에서 편하게 떡볶이를 먹고 있을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을 날씨가 위로해 준다.


아이는 오후에도 한두 번 떡볶이를 떠올렸다. 다른 때보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리 대단한 정성을 기울이지도 않았는데 반응은 상당했다. 좀 더 뭔가를 넣고 마음을 써야 했나 하는 작은 미안함이 싹텄다. 다른 이의 떡볶이로 대신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나를 비밀로 하고 싶어졌다.

     

그 친구는 어느 떡볶이집에서 맛있게 먹었을까?  떡볶이를 먹는 서로 다른 풍경을 만났다. 그 속에는 매일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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