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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25. 2023

고구마튀김 기억 너머

내 요리는 어디서 왔을까?

고구마튀김이 언제부터 먹고 싶었다. 여름이 끝을 보이기 시작할 무렵 햇고구마가 나오면 우선 쪄 먹는 일에 집중한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반복해서 먹으면 질린다.


그때 찾아오는 건 다른 느낌으로 맛과 모양의 변화를 주는 일이다. 고구마가 기름을 만나면 촉촉하면서도 고소함이 배가 된다. 밀가루 옷을 가볍게 입은 속살은 맑게 빛나서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튀김의 백미는 아삭한 식감이다. 집에서 기름의 적정온도를 맞추기가 어렵다. 매번 시도하지만 중간 정도에서 멈춰버린다. 그럼에도 매번 튀김을 할 때는 애써 시도한다. 반죽의 농도를 더 가볍게 하고, 차가운 물을 더 넣거나 고구마 두께를 얇게 한다.     

고구마튀김

기름 위로 고구마가 올라오면 잘 익어간다는 증거다. 흰색이던 반죽에서 노릇한 색이 돌고 점점 진해진다. 팬에 가득하던 고구마 조각들이 하나둘 제 모습을 드러낸다. 후다닥 고구마 4개로 만든 튀김이 마무리되었다. 


튀김을 처음 접한 건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준 고구마튀김이었다. 흐릿한 기억을 꺼내보면 엄마가 튀김을 만드는 시간은 편안했다. 손이 대일만큼 뜨거운 그것을 받아 들고 맛보다 앞섰던 건 엄마와 함께 하는 여유였다.     

 

아침에 과수원으로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엄마가 이날만큼은 집을 지킨다. 엄마를 감싸는 분위기는 굳어있거나 긴장하지 않는 모습이다. 


엄마가 내게 건네는 말은 다른 때보다 천천히 흐른다.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이었다. 그리고 내 답을 기다려 주었다.   


튀김이 밥이 되지는 않기에 본격적인 식사시간 전에 끝내야 하는 엄마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튀김을 만들었다. 엄마가 맛보기로 하나를 꺼내어 내게 건넸다. 난 엄마가 특별한 음식을 만드는 날이면 기미 상궁이 되었다. 

“엄마 정말 맛있어.”

“넌 매일 맛있대.”

언제나 같은 말이지만 엄마는 그 소리가 싫지 않은 눈치다.   

   

나도 이제 엄마가 되니 아이에게 묻는다.

“튀김 어때?”

“응 엄마 정말 맛있어.”

내가 그 시절 우리 엄마에게 했던 그때처럼 답한다.     


고구마튀김처럼 엄마의 모습도 닮아간다. 내 생활의 여러 단면 속에서 엄마를 종종 발견한다. 어릴 적 엄마가 내게 전해 준 그대로 하고 있을 때는 혼자 깜짝 놀란다. 나를 돌보기 보다 집안일에 전력을 쏟을 때는 씁쓸하다. 


부엌에서 진심으로 밥을 준비하는 모습은 엄마와 함께 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스며들었다. 조용히 그런 기분이 다가올 때면 엄마에게 고맙다. 


엄마는 쉽지 않은 세월 속에서도 계절의 음식을 알게 해 주었다.  엄마에게 먹을 것에 대하는 솔직하고 정성스러운 태도를 배웠다.  어떤 날은 엄마에게  내 삶의 어려움을 품어 주지 못한다며  섭섭함을 표현할 때도 있다.


그러다 어느 날 모두가 나간 텅 빈 집안에서 나를 통해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삶의 무게만큼이나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완벽하지 않다. 알면서도 그 틈새를 좁히기 위한 노력보다는 하루를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아서 허우적대는 일이 부지기수다. 엄마의 삶이 오죽했으랴 싶다. 


엄마는 가을이 오면 일하다 대충 씻고는 서귀포 오일장에 가서 고구마를 사 와서 튀김을 만들어주었다. 접시에 소북이 울려진 고구마튀김을 두고 아이와 맛있는 대화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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