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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Oct 05. 2023

엄마와 송편

마음을 표현하는 법

추석준비가 한창이었다. 산적을 만들고 있는데 엄마가 흰쌀 가루가 소복이 쌓인 커다란 스테인리스 양푼을 들고 왔다. 단번에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아차렸다. 늦은 오후에 엄마가 설탕을 넣고 삶은 강낭콩을 조리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엄마가 건네는 콩만 받아먹었다. 그건 이 시간을 위한 준비작업이었다.  

   

엄마는 송편을 만들기 위해 익반죽을 시작했다. 산적을 굽던 동생과 내가 동시에 말을 꺼냈다.

“엄마, 떡 하려고? 누가 먹는다고 그래. 아니 조금 사서 하자고 했는데 기어코 떡을 만드네.”

이 말을 시작으로 우리 둘은 마치 경주하듯이 엄마에게 못마땅한 감정을 쏟아내었다. 다른 단어들로 이어진 말의 핵심은 결국 찾는 이 없는 떡을 만든다는 얘기였다. 

“아니 얘들이 왜 이러나.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아라.”

참다못한 엄마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엄마가 떡을 다 만들기까지 우리의 불만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전을 다 부치고 생선을 굽기 시작할 무렵  송편도 마무리되었다. 찜통에서 찔까 하다가 빨리 끝낼 요량으로 끓는 물에 삶았다. 고향에선 종종 이런 방법을 이용한다. 

“엄마, 떡이 잘 안 익었는데. 시간을 좀 두고 건져내야겠어.”

 언니가 떡을 소쿠리에 한 김 식히기 위해 가지런히 놓으며 말했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다 보니 떡은 참기름까지 바르고 마무리되었다. 엄마가 송편 반쪽을 맛보라며 주었다. 별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가 서운할 것 같아 받아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역시나 맛이 별로다. 

“엄마, 떡 맛이 좀 그런데.”

안 해도 될 말을 했다. 엄마는 들었을 것 같은데 아무 반응이 없다. 막상 내뱉고 나니 아차 싶었지만  지난 일이 되었다. 

추석 아침에 엄마가 만든 떡을 올리고 차례를 지냈다. 아침에 보니 떡이 더 커 보인다. 평화롭지 않았던 분위기에 엄마 마음도 급했던 모양이다. 동생과 난 엄마에게 집에 갈 때 떡을 꼭 가져가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 오빠네 집에는 떡을 먹을 사람이 없으니 두고 가면 결국엔 버리게 된다는 게 우리의 설명이었다.      


추석을 보내고 기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불현듯 그 떡 생각이 났다. 떡을 반죽하고 만들어서 익히는 한 시간여 동안 내가 한 말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엄마에게 떡이란 뭘까 싶었다. 내가 별로라고 했던 송편은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 비추어보면 밍밍할 수 있지만 담백함이 돋보이는 오롯이 아버지의 취향이었다.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신지 십여 년이 흘렀다. 아버진 예민하면서도 따뜻한 분이셨다. 큰 병을 얻어 병원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엄마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빨리 집에 가서 엄마가 과수원 갈 때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다니지 않도록 차를 태워줘야 한다며 그때가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엄마는 지난해  아버지 제사에도 생전 좋아했던 팥 시루떡을 고향 집에서부터 만들어왔다. 


“이제부터는 각자 잘 살아보자. 그게 서로를 도와주는 거다. ”

엄마는 아버지를 보내고 돌아온 날 저녁에 덤덤히 말하며 당신도 열심히 살아가겠노라고 했다. 실컷 울 여유도 없이 살아온 날이었다. 


엄마의 송편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아직도 기억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아무도 반기지 않는 그것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는 딸들에게도 꺼내놓지 못한 가슴속 이야기를 떠올려보니 괜스레 울컥했다. 


묵묵히 별말 없이 떡을 만들어간 엄마를 소환했다. 이제 와서 엄마에게 차마 아빠를 위한 것이었냐고 물어볼 수가 없다. 언제나 담담해지려고 하는 엄마에게 아픈 한 편을 불러내는 것 같다.


겨울날 국화빵과 비슷해 보이는 엄마식 송편에는 농사지은 콩과 불린 쌀을 들고 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서 가루를 만들고, 다시 비행기 짐칸에 실어 온 정성이 모였다. 한입 먹지 않으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송편처럼 엄마는 우리에게 마음을 꼭꼭 숨겼다. 하얀 송편 속에는 연두색 강낭콩 두서너 알이 숨었다.      


엄마에게 아버지는 문득문득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일 거다. 밭일에 힘들고 사는 것이 못마땅할 땐 원망스러움이 커지다가도 제를 지내야 하는 날이 돌아오면 기억이 더욱 또렷해진다. 조용히 엄마가 양손을 모아서 떡을 만드는 깊은 가슴속은 알듯 하지만 그건 단순화된 시선일 뿐이다.  떡을 향한  과정 모두는 엄마가 아버지에게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흰 눈처럼 쌓여간 게 아닐까. 아무도 눈 쌓이는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시간 속에서 산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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