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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Oct 16. 2023

홀로 만두 빚기

천천히 가는 부엌을 바라며

혼자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만두 만들기였다. 그동안은 내가 기본적인걸 준비해 두면 만두피에 소를 담는 본 과정은  아이들이 했다.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은 냉동실 만두피를 꺼내어 해동시키는 중이었다.  이것을 버리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미치자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것처럼 오랜만에 만두를 만들기로 했다.   

 

마트에서 냉동만두를 가끔 사다 먹는데 집 만두가 그리웠다. 이 둘의 차이는 복잡함과 단순함이다. 브랜드 만두는 조리하는 과정은 간단하지만 먹고 나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식구들이 손을 모아 만든 건 우리를 향했고, 마트에 진열된 만두는 많은 사람을 주목한다. 그러니 다양한 이들이 좋아할 만한 여러 맛을 모아놓았다.      


만두소는 일 년이 다 되어가는 묵은지에 대파와 데친 숙주, 물기를 꼭 짠 두부를 넣었다. 다진 돼지고기는 생강가루와 다진 마늘, 양조간장과 매실청에 후추를 넣어서 양념했다. 손에 힘을 주고 몇 번 치대어 주면 준비가 끝난다. 매번 비슷한 방법이었고, 십여 년이 다 되어간다. 만두 맛도 별다름이 없다. 정확히 계량하지 않으니 때에 따라서 싱겁거나 짜거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 집 군만두 

식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만두를 만들며 어느 유명강사의 인생 강의를 들었다. 날은 조금 흐렸고 다가오지 않은 일에도 신경을 쓰는 중이었다. 강의에서 오가는 다른 사람들의 고민에 기대어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었다. 홀로 만두 빚기에 나선 건 방해받지 않고 싶어서였지만 결국은 타인의 일을 끌어들여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만두 빚기가 이렇게 천천히 했나 싶을 만큼 더디다. 고요함 속에서 편하게 하고 싶은 일이었다. 아이들과 하다 보면 왁자지껄하면서 잔칫집을 연상시킬 만큼 복잡해지는 공기가 불편했다. 아이들이 손을 움직여 만드니 수다가 쉼 없고, 때로는 좋았던 분위기가 누구의 한마디에 토라졌다 좋아지기를 반복한다.      


만들어 놓인 만두를 보니 아이들이 만든 것보다도 예쁘지 않다. 처음엔 무슨 수행을 하려는 사람처럼 천천히 했다.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하니 급한 마음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러다 만두를 통에 가지런히 정리해 냉동실로 넣는 과정을 반복할 무렵이었다. 어깨가 살짝 무거워지면서 피곤이 찾아왔다. 그때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스칠 무렵 손은 더 바빠졌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던 게 문제였다.  


한 시간 정도를 하고 있으니 만두소가 바닥을 드러냈고 만두 빚기도 끝났다. 사 먹는 일이 정말 편한 것이었다. 처음 의도와 달리 변해가는 마음을 바라보며 혼자 가는 길은 방해물이 없어서 평화로울 것 같지만 오래, 끝까지 적절한 속도로 가기 위해선 함께 가는 이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홀로 빚은 만두 

언젠가부터 천천히 가는 부엌을 바랐다. 더디게 간다는 건 단순히 속도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그 보다 앞서는 건 가슴에서 오는 느림, 여유를 만들어 가는 적극적인 생활자가 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찾아오는 피로감조차 반갑게 받아들이면서, 속도를 줄이고 내게 맞춰나가는 조절이 필요한 일이었다.      


아이들과 만두를 빚는다고 해서 어지럽다 여길 게 아니었다. 홀로 앉아서 한다고 해서 무한정 원하는 공간과 분위기에 젖어들기도 간단치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 감정을 스스로 알아차려야 하는 게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순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종종 어떤 기분이라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생각의 터널로 들어가 버린다.


어찌어찌 만두 빚기는 끝났다. 저녁에 아이와 오후에 만든 만두 몇 개를 구워서 먹었다. 기다렸던 맛을 오랜만에 만났다.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우리 집 만두였다. 스스로 계획한 일에서 일찍 지쳐버릴 때 힘들다. 처음 먹은 마음이 너무 빨리 식어버린 것 같아 허탈했다. 냉동실에 있는 40여 개의 만두는  내 생활의 일부가 극히 짧게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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