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Oct 18. 2023

파스타의 온도

우연한 행복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다. 우선 점심을 먹고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특별히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목적지도 없었기에 약속장소에서 바로 보이는 파스타 집으로 갔다. 각자 먹고 싶은 걸 주문하니 바쁜 이들의 사정을 고려한 듯 별 기다림 없이 음식이 나왔다.      


포크를 들어 해산물 크림파스타면 몇 가닥을 입에 넣었다. 엄청 따뜻했다. 조금만 더하면 혀가 데일만큼이었다. 그동안 먹었던 파스타를 떠올려 봤지만 이렇게 뜨거운 느낌은 처음이었다. 술술 넘어간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접시를 순식간에 비웠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었지만, 햇볕은 따가울 정도였다. 따뜻한 음식이 당기는 날씨도 아니었는데 파스타는 온도 하나로 나를 사로잡았다.     

 

사람들이 편하게 오가는 식당이었기에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음식의 열기는 크림이주는 느끼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접시 가득했던 해산물과 면에 채소를 먹으니 배는 부르고 여유가 생겼다. 아무에게도 꺼내놓지 않은 산란함이 점점 희미해졌다. 


평범한 파스타 한 그릇이 하루 지난 아침까지 떠올랐다.  그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았다가 우연히 맞닥뜨린 일이었다.  프랜차이즈 식당이었던 그곳의 요리사가 담은 진심이 내게 전해졌다고 해석하기엔 너무 억지스럽다.


누구에게도 쉽게 펼쳐 보이지 못하는 복잡한 기분을 안고 갔다. 한 달 전 약속이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오가는 시간이었기에 기대하면서도 한편이 불편했다. 이것을 먹지 않았다면 사람들과 모여있으면서도 홀로 있는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옆에 있는 친구와 속도를 맞추려고도 하지 않고 열심히 포크를 움직였다. 그렇게 한 그릇을 마무리할 무렵  함께 하는 이들과 눈을 맞추며 얼굴을 마주할 만큼 편해졌다. 몸에 온기가 도니 흔들리던 마음 가지가 제자리를 잡았나 보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함께한 이들의 여행의 이유를 들었다. ‘여행’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모두가 설레는 분위기였다. 


여행에 대한 서로 다른 온도를  나눴다. 어제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어떤 이는 엄마이기에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집안일의 연장이었다.  다른 이는 아이들과 추억을 쌓는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되었다. 또 다른 이는 집을 벗어나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싫어서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적정선의 안과 밖을 오가는 일 같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서 맞닥뜨리게 되는 갑작스러운 일은 당황스럽고 힘들다.  내가 안정적인 일상을 바라다가 균형을 잃을 때 큰 무게를 느끼며 흔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여행에서 계획한 그대로를 확인할 때도 즐겁지 않다. 이 둘 사이를 잘 오가며 탄력적으로 움직이고 적응하기가 이상적이지만 어려운 일이다. 결국은 직면하고, 되는대로 헤쳐나가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인 동시에 언제나 바라는 삶의 태도다. 예상에 없던 뜨끈한 파스타를 만난 것 같은 여행의 시간이  다가왔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홀로 만두 빚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