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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03. 2023

빠르게 오믈렛

매일 단순하게 집밥

하루도 빠짐없이 요리를 한다. 내가 고른 것들로 만들고 그릇에 담아내는 모든 것들에는 의도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내가 있다.  특별한 것보다는 반복되는 게 대부분이다. 레시피를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만큼 간단한 것들이 중심을 이룬다. 


엄마에게서 경험했거나 친구 집에서 먹었던 음식, 회사 다닐 때 몇 번 찾았던 좋아하는 식당 메뉴 등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해석할 뿐이다. 지극히 주관적이며, 미리 준비하는 것보다 즉석에서 이루어진다. 내 부엌은 나를 위한 공간이고 이곳의 자유란 내 마음대로 요리해도 괜찮다는 의미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내가 더 좋아하고, 편해서 자주 찾는 것이 나만의 요리다.     


음식에 대한 태도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종종 나타난다. 남편이 평일 하루를 쉬기로 했다. 숙직 후에 이어지는 휴가다. 집에 머물기보다는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한다.  오랜만에 산책을 나섰다. 남편과 내가 우리 집 정원이라고 부를 정도로 자주 찾는 작은 마을 안에 자리한 숲 속 정자다. 배롱나무꽃이 유명한 그곳은 꽃피는 계절이 아니면 인적이 드물다. 지금처럼 나뭇잎 떨어지는 계절이면 더욱 그러하다.     

점심 요리 채소참치 오믈렛

우리가 나누는 얘기가 울릴 만큼 조용하다. 보온병에 담고 간 커피를 한잔 마시며 그동안 밀려놓았던 일들을 펼쳐놓았다. 마무리하고 일어날 즈음에 점심을 무얼 먹을 것인지가 과제가 되었다. 칼국수가 언제부턴가 생각났다. 오래전 갔던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장을 보고 나서 수확이 끝난 휑한 논을 뒤로하고 식당 간판이 보일 무렵부터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임대라는 글자가 크게 보인다. 차를 돌려 돌아가는 길에 남편은 아무거나 먹고 가자고 했지만 별로 내키지 않았다. 마음에 든 곳이 아니면 밖에서 먹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집에 가면 맛있는 거 해줄게. ”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자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만만하게 꺼냈다. 실은 집에도 특별히 먹을 게 없었다. 외식이 싫어서 말을 던져놓고는 뭘 먹지 하는 고민이 찾아왔다.      


장바구니에는 있는 불과 몇 분 전에 산 참치통조림이 생각났다. 이것과 채소만 있으면 가능한 음식이다. 집에 있는 양배추와 양파, 파프리카, 청양고추를 썰어 둔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준비해 둔 채소에 허브 소금을 뿌려서 볶다가 한숨 죽으면 참치 넣은 달걀 물을 올리고 주걱으로 적당히 저어가며 익히면 끝이다.     


점심 찬은 방금 만든 오믈렛과 무생채, 멸치가 전부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식탁에 올리는 일, 내가 만드는 식탁의 이야기다. 매일 만들어 비슷한 듯하지만 다르다. 그날 기분에 따라서 눈에 들어오는 재료가 제각각이니 같은 게 아니다. 그곳에서 멀어지고 싶어 대충 할 때도 있지만 돌아서면 그 자리다.     


십 분도 안 되는 짧은 동안에 만들어낸 것을 보고 남편이 놀란다. 점심이 한참 지나 배고팠던 우리는 오랜만에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들으며 열심히 먹었다. 채소와 참치, 달걀이 어우러지니 모난 게 없다. 허브향이 은은해서 느끼하지 않다. 무엇을 어디에서 먹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던 짧은 방황은 결국은 집에서 마무리되었다.    

일상에서 음식을 만들고 가족과 먹는 과정은 즉흥곡과 비슷하다. 별 준비 없이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식탁에 올린다. 누군가의 비법을 살펴보고 한참이나 준비하는 일은 그야말로 특별한 날에 한정된다. 그러고 보면 하루하루 먹는 일은 내가 살아가는 흔적이다. 


한두 개 혹은 서너 가지 주변에 있는 것들로 가능한 것. 그래야 집중해서 부엌에 머물 수 있고 힘들지 않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그동안이 쌓아온 경험이다. 양배추와 양파, 당근의 조합이 괜찮다든지 색다른 달걀말이를 원하면 잡채를 넣어도 된다는 정도의 사전 지식만 있다면 밥하고 먹는 일이 어렵지 않다. 


혹여 그것이 없더라도  너무 많은 것을 넣으려고 무리하지만 않아도 요리가 된다. 한 그릇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느낄 수 있으면 충분하다. 그것이 오늘도 내일도 나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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