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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01. 2023

익숙해서 특별한 달걀찜

따뜻한 아침밥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자꾸 망설였다. 평소와는 다른 싸한 느낌이 감돌았다. 벌떡 일어나 보니 7시가 다 되어간다. 늦잠이란 걸 잤다.  아침 준비가 안 되어있어 당황스럽다. 밥은 있지만 찬이 별다른 게 없다. 간단한 것, 요즘 자주 해 먹는 달걀찜으로 정했다. 짧은 시간 동안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음식, 서늘한 기운에 몸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어 제격이었다.     


달걀 다섯 개를 깨트리고 잘 풀어준 다음 물과 함께 섞는다. 새우젓이나 천일염으로 간하기도 하지만 맛있게 먹기 위해 참치액으로 했다. 보글보글 끓으면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 트리고 비밀무기인 청양고추를 다져서 넣는다.    

아침 달걀찜

올봄부터 식탁 위 필수 재료가 된 청양고추는 깔끔한 맛은 물론 적당한 매운 기운으로 음식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방에서 뒤척이고 있는 아이를 불렀다.     

달걀찜을 좋아하는 아이는 불과 며칠 전에 먹었지만 반긴다. 아이는 “맛있다”는 담백한 말로 모든 걸 설명하고는 부지런히 먹기 시작했다.     

 

달걀찜은 언제나 준비된 비상약 같다. 먹는 것에 약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김이 피어나는 뜨끈한 달걀덩어리를 한두 숟가락 뜨면 가족 누구든 화색이 돈다. 기운 없이 축 처져 있거나 입맛이 없다고 밥을 건너뛰겠다고 했던 이도 식탁에 앉는다.     


뚝배기에서 달걀이 적당히 부풀어 끓어오른 것을 한 숟가락 맛보는 순간 행복하다 할 만큼 기분이 전환된다. 다른 반찬을 떠올리지 않을 만큼 술술 넘어간다. 이것 하나만 올린 식탁은 단출해서, 소박해서 별 것 없다는 미안함이 사라진다.      


달걀은 김치나 된장, 고추장 같은 존재다.  어느 집이든 냉장고에 달걀 몇 개는 있기 마련이다. 알알이 붙어 있는 달걀 몇 개가 변신한 달걀찜은 부르면 언제나 달려올 것 같은 엄마같이 포근하고 따뜻하다.      


뚝배기에 담긴 뜨거운 열기 가득한 이것을 부지런히 준비했지만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것 같다. 매번 할 때마다 우렁각시처럼 누가 살금살금 와서 준비해 둔 것 같은 분위기다. 손쉬운 요리 과정은 만든 이의 존재조차 잊게 할 정도다.    

  

달걀찜에 대한 기억은 엄마의 부엌풍경이 우선 떠오른다.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내려가는 늦가을이면 밥을 지어 뜸 들일 무렵 솥에 작은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달걀 하나를 풀고는 참기름을 좀 넣고 아버지만을 위한 달걀찜을 만들었다.


달걀이 귀한 시절이었다.  엄마의 손길은 뜨거운 온기를 뿜는 솥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밭으로 나가는 하루를 위해 달걀찜을 아버지 밥상에 올렸다. 바다 기운을 담은 바람이 거세게 불어 하늘 끝까지 뻗은 삼나무가 휘청이는 스산한 아침에도 그릇과 달걀이 붙어버린 듯한 얼마 안 되는 그것이 아버지 국그릇 옆에 놓였다.      


아침밥은 달걀찜으로 무사히 끝났다. 몽글몽글한 달걀 덩이가 마치 순두부처럼 녹아내렸다. 먹거리가 별로 준비되지 않은 날 익숙해서 불현듯 떠오르고, 어색하지 않아서 마음 놓고 먹는다. 새로운 날을 기대하면서도 긴장되는 건 싫다. 때로는 비슷비슷한 날이 안정감을 준다. 달걀찜도 이런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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