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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Oct 27. 2023

매일매일 무

가을에 하면 좋은 일 ④ 

빵집 앞에서 저 멀리  로컬푸드 매장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산을 이룬 무다발 때문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무가 여섯 개씩 묶여 파란 비닐에 담겨있다. 황토가 드문드문 묻은 무는 며칠 전 수확했는지 무청도 제법 싱싱하다. 집 방향으로 서너 걸음 걸어가다 발길을 돌려 무를 샀다.       


무 한 다발에 사천 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이다. 마음 한편으론 횡재한 듯하지만, 다시 불편하다. 들고 가는 일이 문제다. 판매직원에게 비닐 하나를 더 달라고 해서 단단히 싸고는 양팔로 안았다.     

“그거 얼마요? 어디서 샀소? 농협?”

공공근로를 다녀오는지 노란 조끼를 입은 할머니 몇 분이 내 옆을 지나던 중 한 어른이 물었다. 스쳐 지나는 길에서 볼 때도 무가 실해 보였나 보다. 무거운 걸 들고 가는 길이 고역이라고 여기던 참에 한마디 말에 “그래도 잘 샀어”하고 나를 다독였다.     

 

어느 아파트 표지석 앞 빈 공간에 잠시 무를 올려놓고 숨을 내쉬고는 집으로 빨리 걸음을 옮겼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신발장 앞에 무를 뚝하고 떨어트려 놓았다. 무를 끙끙대며 가져온 건 가을이라는 의미다. 이때 나오는 무는 다른 양념이 필요 없을 만큼 달다. 낱개로 사는 것보다 다발로 사야 제철 무를 만나는 느낌이다. 무청이 제대로 달려있고,  깨끗하게 세척된 것보다 곳곳에 어느 농부의 밭 색을 보여주는 흙이 묻어있는 게 정겹다.     


올해 처음으로 산 가을무로 무생채를 만들었다. 무 하나를 들고는 무청을 잘라내고 씻은 다음 껍질을 벗기고 채를 썰었다. 멸치 액젓과 매실청을 조금 넣었다. 언제가 만들어 둔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는 김치 양념을 꺼내어 버무리기 직전에 식초를 조금 떨어트린다. 이 과정을 거치면 어색한 액젓향대신 새콤함과 더불어 깔끔한 뒷맛을 전한다.

아침에 만든 무생채 

오래 두고 먹을 게 아니기에 싱싱한 맛을 위해 소금에 절이는 과정을 건너뛰었다. 몇 해 전부터 해온 나만의 비법 아닌 비법이다. 이미 우리는 하루 중 기준치 이상의 나트륨을 섭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짠맛은 음식의 진미를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무생채는 양념을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래서 김치계의 인스턴트라고 해야 할까 싶다.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에 액젓 정도만 있어도 가능하다.    

  

무생채를 맛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건  손맛이 아니라 가을 무이기에 당연할 일이다. 무엇을 더하지 않아도 여름을 보낸 무는 제법 살이 올랐다. 매번 볼 때마다 신기하다. 농부가 거름을 주고 열심히 가꾼 결과이기도 하지만 땅의 기운을 가득 받아서 통통하고 단단해지는 자연의 이치에 놀란다. 설탕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어렴풋한 은은한 단맛이 매력적이다.     


무의 순백 속살은 순순하다. 그래서 찰나에 밖에서 온 여러 가지를 흡수한다. 자신을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재료의 맛을 살려낸다. 살짝 보면 사방으로 통통한 게 무뚝뚝해 보이지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깊은 무엇이 있는 듯하다. 그러니 다른 것들과도 잘 어울린다.    

  

갓 지은 밥에 생채 몇 가닥만 올려도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부담스럽지 않은 김치가 무생채다. 만드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가볍다. 무가 입안에서 생생하게 들려주는 리듬 때문에도 즐겁다. 무생채를 밥 위에 올려 달걀 프라이를 올려 먹는 것만으로도 맛있는 가을을 경험하는 일이다.      


계절의 것들을 곁으로 가져오는 일, 소박하지만 어느 한때를 빛나게 한다. 무가 이제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사흘 동안 매일 아침에 무로 생채를 만들었다. 어느 날은 동생이 생각나 새벽부터 무생채를 만들어 택배로 보냈다. 매일 내 고민을 들어주는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마음편지다.      


어릴 적에도 노을이 지고 초저녁 기운이 들어설 무렵이면 엄마는 무 한 두 개를 밭에서 뽑아 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밥상에는 당연히 생채가 올랐다. 머뭇거리다 먹어본 그 맛은 김치인 것 같은데 달랐다. 상큼하면서도 시원했고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했다. 그렇게 무생채에 대한 추억이 하나씩 쌓여갔다. 


무엇이든 가까이한다는 건 정서적으로 통한다는 의미다.  하루마다 무로 만들고 싶은 요리가 떠다닌다. 무밥, 무전. 뭇국. 깍두기, 무시루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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