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Oct 25. 2023

단팥빵에서 완두콩빵으로

나를 채워주는 일

남편이 마트에서 단팥빵을 골랐다. 내 두 손바닥을 더한 것보다 큰 빵이었다. 남편에게 집에도 먹을 게 있는데 사느냐고 나무랐다. 불과 몇 분 후도 내다보지 못한 얘기였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니 점심때다. 밥 준비를 하기 전에 우선 무엇이라도 먹고 싶었다.   

  

식탁 위에 올려진 위풍당당한 빵이 들어왔다. 크기 때문에 혼자 먹기는 부담스러워 남편과 나눴다. 한입 두 입 먹을 무렵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기분이 좋아질 만큼 괜찮은 맛이다. 그리 달지도 않고 적당히 거친 팥소 느낌이 좋다.  


빵 다섯 개는 주말 우리 가족에게 선물이었다. 마지막 남은 하나를 두고 누가 먹을 것인지, 나누면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막내와 고민할 정도였다. 아마 이때부터였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단팥빵을 만들고 싶은 잔잔한 파도가 일었다.     


팥빵의 핵심은 팥 소다. 냉장고에 엄마가 준 잡곡 중에서 팥을 찾았다. 받은 기억이 희미한 건 없다는 결론에 가깝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었다. 역시 팥은 보이지 않고 냉동해 둔 완두콩이 들어왔다. 팥과 완두콩은 너무나 다른 분위기다. 그럼에도 삶은 완두콩이 부드러운 건 잘 알고 있기에 이것으로 하기로 했다.      

완두콩빵을 위한 여러 과정

얼른 꺼내어 한번 씻고는 삶았다. 40여 분이 흘러갈 무렵 콩을 살피니 부스러질 만큼 잘 익었다. 설탕 서너 숟가락을 넣고 블렌더로 갈았다. 이제부터는 약한 불로 시간을 두고 수분이 날아가도록 하면 된다. 한 시간 반 정도가 되어가니 콩 앙금이 꾸덕꾸덕한 모습을 드러냈다. 불을 끄고 식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 통에 담고는 냉장고에 넣었다.   

  

아침부터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나를 설레게 하는 완두콩빵 만들기다. 종종 참고하는 유튜버 레시피를 따라서 했다. 미지근한 물과 설탕, 이스트, 소금, 식물성 기름을 넣고 잘 저은 다음 밀가루 290g을 섞고 반죽했다. 30분 동안 발효시간을 갖고 가스를 빼는 과정을 거쳐 완두콩 소를 넣고 둥글게 만들었다.      


다시 30여 분을 기다린 후에 180도 오븐에서 30분을 구웠다. 빵이 구워지는 동안 동생과 전화로 수다를 떨었다. 가을 낮은 고요하다. 적당히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이 집안을 오가는 동안 햇볕도 거실 중앙으로 들어온다.     


오븐을 열어 빵을 꺼냈다. 빵 8개가 빛나는 얼굴을 보여준다. 빵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주었는데 부풀어 오르는 과정에서 흔적이 줄었다. 어떤 건 한라산 백록담을 닮았다. 가장 못난이를 꺼내어 맛을 보았다. 가족들에게 괜찮은 것만 보이고픈 마음이다. 초록이던 완두콩이 연두색으로 변했고 김이 모락 피어오른다.    

  

나도 몰래 마트의 것과 비교한다. 그것보다 담백하지만 폭신한 느낌은 덜하다. 반죽하는 과정 어디쯤에서 오류가 난 것 같다. 팥빵보다 소가 더 부드럽다. 빛바랜 콩잎을 연상시키는 색이다. 모양도 들쑥날쑥 제각각이어서 귀여우면서도 아쉽다.   

  

어제 본격적인 마음을 먹었고, 하루 뒤에 그것을 해냈다.  일상에서 이리도 바로바로 실천하는 것이 있을까 싶다. 머릿속으로 그려보지만 멈춰버리거나 더디다. 때로는 다른 이와 합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기다림은 필수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달 혹은 계절이 바뀔 때까지 꾸준히 해야 한다.  

완두콩빵 

빵은 내가 바라는 것을 단시간에 이루어준다. 먹고 싶거나, 집에서 만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 여러 종류의 빵은 “해봐야지”하는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넉넉히 네 시간 정도면 흰 밀가루에서 덩어리 진 모습으로 태어난다.      


빵은 며칠 동안 허전했던 마음을 채워주었다. 하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는 나를 만났다. 다음을 위해 부족했던 게 무엇인지 과정을 되뇌어 보았다. 시작할 때는 장밋빛 그림을 그려보지만 마무리된 후에는 예상과 다룰 수 있음을 확인한다. 당연하지만 무엇을 만들고 나서야 알게 되는 진리다.     


마트 단팥빵을 통해서 내 단팥빵을 떠올렸고 완두콩 빵으로 이어졌다. 내 것을 만드는 일은 이처럼 연결되어 있다. 내 앞에 놓여 있는 것들에 끌림이 있을 때 다음 단계로 행동한다. 별 것 아닌 것이 특별해지는 건 나와 만났을 때다.          

매거진의 이전글 양배추같이 단단해지고 싶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