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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Oct 23. 2023

양배추같이 단단해지고 싶을 때

평범한 하루를 위한  샐러드 

매일 나를 위한 한 가지를 고민하고 행하려 한다. 주부의 일중에서 무엇이 내 일이고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조차 모호하지만 나름대로 경계를 만든다. 요즘 집중하는 건 건강하게 먹기다. 남편이 해를 거듭할수록 몸에 이상 신호를 보내는 일이 많다. 나 역시 일심동체형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날이면 그날 즉시 혹은 며칠 후에 몸 어디선가 아우성이다.      


평소와 다른 상태는 하루 생활을 불편하게 한다. 이럴 때마다 그동안 몰랐던 일상에 감사하게 된다.  가볍게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양배추가 식탁에 오르는 날이 잦다. 어느 누구도 찾지 않지만 내 바람을 담는다.  음식을 꾸준히 챙기며 어제와 다른 오늘이 아니라 어제처럼 평범하게 지내고 싶은 내가 머문다.     


양배추 샐러드는 우리 집에서 아침을 여는 대표 음식이다. 오롯이 가족이 모두 모여 먹는 집밥은 아침에 한정된다. 바쁜 시간에 후다닥 대충 있는 것으로도 한 그릇을 만들 수 있다. 샐러드는 채 썬 양배추와 사과를 함께 곁들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두부소스 양배추사과 샐러드 

샐러드 맛은 채소의 신선도와 더불어 소스가 중요하다. 지금도 양배추에 최적인 소스를 찾는 중이다. 지금까지는 만들었던 건 대략 세 가지다. 올리브유에 발사믹과 매실청을 넣거나 올리브유에 감식초, 어느 날은 데친 두부에 아몬드 가루와 올리브유, 꿀과 소금을 더했다. 지금까지는 두부가 들어간 게 가장 만족스럽다. 아삭한 양배추에 고소한 맛이 서로 겹겹이 어울려 날 것의 향이 덜하면서 잘 넘어갔다.   

  

채소를 즐기지 않는 아이들은 이것에 젓가락을 잘 가져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던 일이었다. 식사 때마다 남편에게만 꼭 한마디 한다.

“여보, 이거 몸에 좋은 거야. 다른 거 먹지 말고 이거 꼭 먹어요.”

그는 이 말에 얼마나 깊은 진심이 들어있는지 모를 것이다.     


남편은 대충 듣고 흘린다. 평소에도 채소보다는 고기를 즐긴다. 병원을 찾는 일이 생기지만 아직은 먹는 일에는 마음이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남편 앞에 놓인 접시에 샐러드가 많이 남아 있는 걸 볼 때는 슬며시 화가 일어난다. 내가 이렇게 신경을 쓰는데 먹는 일이 힘들까 하는 생각이 올라온다. 

감식초 양배추 사과 샐러드

사람이 변하기는 참 어렵다는 걸 나를 통해서도 알게 되는 나이다. 그럼에도 남편에게만은 다르다. 양배추 샐러드를 먹는 일은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는데 그것을 헤아려 달라고 투정 부리는 것 같다. 먹는 일을 식치라고 할 만큼 삶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매일 그것을 상기시키며 산다는 것 또한 억지스럽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양배추가 식탁에 오른다. 몸에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일상과 조금 다른 것을 강요하는 듯하다. 양배추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신경 써야 할 만큼 거리가 있다. 먹는 일에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는 건 그동안 내가 겪었던 일들 속에서 별일 없이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불안함을 대하는 나를 만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내가 양배추를 요리하는 일이 자연스러웠으면 한다. 강한 목적의식은 사람을 경직되게 한다. 편안해져야 내가 만드는 음식도 그럴 것이다. 천천히 양배추 샐러드와 가까워지며 내 하루도 아삭아삭한 리듬으로 촘촘해졌으면 한다. 두려움으로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외면하려 말고 겹겹이 쌓인 양배추같이 단단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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