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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Dec 31. 2023

유채나물과 양배추당근 김밥

돌고 돌아 내가 원하는 밥상

여름 끝에 빌린 책을 돌려주기 위해 버스를 오랜만에 탔다. 생활 대부분이 동네에서 이뤄지기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 집에만 머물러 있으면 행동을 돌아보기 힘들다. 집 밖을 벗어나 시간이 생길 때 문득 살펴본다. 오늘 뭘 먹었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유채나물이 떠올랐다. 유채 하면 봄날 바람에 춤을 추는 노란 유채밭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엄마가 보내준 그건 이미 줄기가 굵을 대로 굵은 나물이었다. 끓는 물에 데쳐서 나물을 만들었다. 진간장과 참기름, 깨를 뿌리는 게 전부다. 어릴 땐 정말 좋아하지 않던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귀한 것이 되었다. 제주가 아닌 곳에서는 농사를 별로 짓지 않는지 유채나물을 만나기 힘든 까닭이다.   

양배추당근 김밥

고등학교 1학년 시절 5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자취방으로 가다 마주했던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닷물과 노란 유채밭이 어우러진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향을 벗어나 살기 시작한 지 오래다. 어릴 적에는 단지 꽃으로만 기억되던 게 이제는 맛있는 먹거리로 소중히 다룬다. 


점심에는 양배추와 당근이 가득 들어간 김밥을 말았다. 딱 한 줄이 전부였다. 얼마 전부터 당근과 양배추를 사랑하기로 했다. 몸에 좋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지만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은은한 달콤함에 자꾸 손이 간다.  


양배추와 당근을 채 썰고 동백기름에 소금을 조금 넣고 볶은 다음 달걀물을 부었다. 적당한 크기의 전이되자 그것을 밥이 아주 조금 들어간 김 위에 올렸다. 그리고 돌돌 말았다. 더 이상 무엇을 넣어야겠다는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다. 대충 썰어놓은 김밥 8조각은 점심식사로 충분했다. 


채소를 먹는 일에 관심을 갖다 보니 새롭게 알게 되는 게 많다. 젓가락을 들어 한 조각 먹으면 몸이 편안하다. 그다음으로 여유와 함께 기분이 좋다. 매일 밥을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할 때가 별로 없다. 생각할 뿐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바라는 것만 늘어난다. 나를 위하는 일이 결코 멀리 있지도 않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실천하는 작은 힘이 나로 향하도록 하는 정성이 필요한 일인 듯했다.  

유채나물

나물은 간단하지만 결코 다른 요리에 비해 신경 씀이 덜하지 않다. 오히려 진심을 담을 때가 더 많다. 봉지 가득했던 채소가 뜨거운 물을 만나면 접시 하나에 덩그러니 담길 정도가 되는 사실에 매번 놀란다. 소박하고 은근하다.


채소를  건강하게 먹기 위해선 싱싱한 것을 시들기 전에 빨리 요리하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먼저 꼼꼼히 씻는 과정을 거치는 것도 당연하다. 물이 끓을 때 덜도 더도 말고 적당히 숨 죽고 아삭 거림이 있을 정도로 데쳐낸다. 그러려면 다른 것을 하다가 제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냄비를 확인해야 하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재료가 지닌 본래의 맛을 살리기 위해 고민한 적이 없다. 그건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으면 되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 또한 쉽게 얻어지는 건 아니었다. 달거나 짠맛에 길들여진 입맛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재료 자체에 만족할 줄 아는 넓은 마음도 필요하다.     


말은 그 사람의 가슴속을 보여주는 것이고 먹는 일은 근원적인 욕구를 단숨에 나타내는 징표라 생각한다. 더하지 않은 채소가 중심이 된 식탁에 앉은 날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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