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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an 03. 2024

마지막 날, 첫 케이크

함께 만들고 먹는 일

케이크를  23년 마지막 날 아이들과 만들기로 했다. 전날에 생크림을 품어줄 케이크 시트인 제누아즈를 준비했다. 오후 무렵 달걀 5개를 깨트려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는 것으로 준비에 나섰다.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 식물성 기름, 달걀노른자에 설탕을 잘 섞어 두었다. 흰자로 만든 머랭을 두세 번에 걸쳐 더하고 나서 둥근 팬에 담고는 구웠다.     


이때부터 케이크를 향한 설렘이 시작되었다. 일요일 저녁 무렵에 휘핑크림을 열심히 저어 생크림으로 만들었다.  빵 위를 장식할 딸기도 씻었다. 이맘때 하얀 생크림과 딸기의 조합은 눈이 부실만큼 환상적이다. 하얀 눈을 연상케 하는 크림에 빛나는 붉은 딸기는 다른 게 필요 없는 짝꿍이다.     

학원 갔던 큰아이가 돌아왔다. 식탁 주변으로 막내도 다가온다. 빵을 반으로 자르고 한쪽에 크림을 발랐다. 그 위에 썰어놓은 딸기를 올리는데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며 소곤거렸다. 남은 반쪽 빵으로 위를 덮고 생크림을 발랐다. 크림이 옆으로 흘러내리며 제과점 케이크만큼 두껍게 올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금씩 하얀 옷을 입는 케이크는 우리가 완성해 간다는 큰 만족감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딸기 몇 알을  위에 올렸다. 간단하면서도 예쁜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저녁 식사 후에 먹기로 하고는 냉장고에 보관했다. 


케이크를 먹는 시간은 매번 설렌다. 동네 카페에서 혼자 조각케이크를 주문하고 그것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기까지 걸리는 잠깐은 정말 기분 좋다. 커피 한 모금과 달콤한 그것을 먹을 땐 그저 행복하다. 우울한 날에도 케이크가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만큼은 걱정거리를 잊는다. 몇 번의 움직임을 통해 케이크가 접시에서 사라질 동안은 다른 어떤 것도 끼어들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케이크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가끔 시내에 갔을 때 제과점 유리창 너머로 보관함에 놓여있는 그것에 빨려 들어가듯 잠시 눈이 멈추곤 했다. 시골에서 케이크는 친척 결혼식에서나 가끔 만나는 귀한 거였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가 사람들을 기다린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함께 만든 딸기 케이크는 달콤한 디저트에 대해 인상 하나를 새롭게 더했다. 

    

아이들과 가끔 빵을 만들었지만, 이날처럼  얼굴이 밝았던 적은 없다. 서로의 손이 빵 위를 지나며 한 번씩 무언가를 할 때마다 바뀌는 케이크의 얼굴은 그 자체로 선물이었다.      


거실에 둘러앉아 케이크를 한 조각씩 접시에 놓고는 포크를 들어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달달하면서도 순한 부드러움이 가장 먼저 다가오고 그다음은 딸기의 빛깔에 흠뻑 빠진다. 


“지금까지 먹었던 케이크 중 최고야.”

아이들의 감탄사에 모든 게 담겼다. 큰아이가 3~4살 무렵인 십여 년 전 생일에 케이크를 만들다가 실패로 돌아간 적이 있다. 결국은 동네 제과점 신세를 져야 했고, 그 뒤로는 케이크에 도전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다 멈췄다. 그러다 이번에는 용기를 내었다.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물론 세상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거든다. 새해 희망을 얘기하고 케이크를 먹는 것으로 아쉬웠던 한 해를 마무리했다.


케이크 옆에는 항상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다. 그것이 언제나 케이크를 거불 할 수 없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날, 하얀 바탕에 빨강 딸기를 올린 우리의 첫 케이크 앞에 온 가족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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