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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an 05. 2024

겨울 만두 빚기

경험이 알려준 깊은 맛 

만두의 계절이 돌아왔다. 사계절 즐겨 먹는 음식이지만 추운 겨울에는 더욱 특별하다. 둥근 만두피 위에 원하는 것들을 넣어 만든 소를 손으로 여미는 것만으로도 포근한 기운이 전해온다.     


아이들 역시 만두를 빚자고 언제부터 난리다. 며칠에 만들고, 무엇을 넣을 것인지 나름대로 고민하고 말한다. 나보다 더 만두에 진심인 그들의 모습에서 뜻밖의 세계를 발견한다. 어른들이 어떤 세상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바라보는 정도는 훨씬 크고 넓어진다는 것. 여행을 통해 낯선 공간에 발을 딛고 경험하는 그것뿐만 아니라 먹는 일도 다르지 않다.     


큰아이는 6살, 막내는 초등학교 입학 무렵부터 만두 빚기에 나섰다. 아이들의 고사리 손을 거친 만두는 소가 옆으로 삐져나오고 모양은 엉성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만두피가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처음 대여섯 개가 만들어지고 나면 바로 시식의 시간이 돌아온다. 내가 만두의 핵심인 소를 만들었기에 어떤 맛일지 이 시간만큼은 떨린다.  

겨울날 우리 집 김치만두 

우리 집 군만두 스타일이 참모습을 드러내는 때다.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만두를 올린다. 앞뒤가 노릇하게 구워질 무렵 전분 푼 물을 부어주고 중간 불에서 5분 정도를 기다리면 촉촉한 만두를 맛볼 수 있다.    

 

팬에서 금방 꺼낸 만두 앞에서는 젓가락으로 호호 불면서도 뜨겁지만 앞서가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렵다. 혀를 데일망정 우선 입을 크게 벌리고 한입 베어 문다. 담백하고 무엇이 더해지지 않은 그대로의 소박한 맛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 손을 움직여 만들었으니 그것에서 오는 뿌듯함이 크다. 이 분위기와 기분을 알면 자꾸 생각나는 기억의 맛으로 자리 잡는다.       


꾸물꾸물한 날 집에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만두를 만드는 건 겨울을 잘 보내기 위한 정서적 준비다.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밖은 춥지만 집에서는 충분히 편안해질 수 있음을 확인한다. 


해마다 겨울이면 만두를 빚었다. 일요일에 만들고 나면 한 주를 넘기기 어려울 만큼 빨리 동날지라도 이것을 하지 않고 건너뛰는 겨울은 허전하다. 만두 빚기는 누가 달력에 표시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가족 행사가 되었다. 


“엄마 올해는 전체를 10으로 봤을 때 고기가 1 정도면 김치는 8로 하고, 나머진 숙주하고 두부면 될 것 같아.”

큰아이에게 만두소를 어떻게 할지 물었더니 사뭇 진지한 답이 돌아온다. 아이는 묵은지만으로도 깊고 담백한 맛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옆에서 대충 보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이래서 만지고 느끼고 오감으로 다가올 때 무엇이든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다. 아이 의견을 따라서 소를 만들었더니 다른 때보다도 풍부하면서도 꽉 찬 맛이 찾아왔다.

     

“다 괜찮아”라는 말도 좋지만 “난 이런 게 더 좋아”라는 선명한 의견이 편할 때도 많다. 이처럼 원하는 걸 알기 위해선 먹는 일이든, 살아가는 일이든 직접 뛰어들어봐야 알게 된다. 시판 찹쌀 만두피 세 통을 다 쓰고도 소가 남아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만두 만드는 날은 내게 작은 자유가 찾아온다. 난 소를 만들고 나면 뒤로 물러서서 바라만 봐도 되기에 가볍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남편과 아이를 자세히 보게 된다. 조금 부풀려 얘기하면 가족의 재 발견 같은 느낌이다. 그들의 얼굴과 작은 대화를 살짝 엿들으며 일상에서 만나지 못했던 다른 모습이 다가온다. 음식이라는 대상을 볼 때 종종 과정은 생략된 채 접시에 담긴 요리에만 집중한다. 그럼에도 그 시작을 알고 끝까지 함께 가는 건 사람을 알아가는 것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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