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Jan 11. 2024

오랜만 식빵

오랜만에 식빵을 구웠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달콤한 것에도 끌리지만 기본적인 심심한 먹거리가 생각난다. 이건 어떤 것과도 잘 어울린다.  토요일에 만들었던 딸기케이크 크림이 조금 남았다. 딸기에 콕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담백한 빵에 발라 먹으면 상상하는 그 맛이다.     


한창 빵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던 지난가을에는 식빵을 서너 번 이상 만들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빵으로 향하는 날들이었는데 요즘은 시들하다. 레시피도 가물가물하다. 종종 참고했던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빵 만드는 재료와 도구를 하나씩 식탁 위에 올려놓는 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잘 몰라서 어설펐던 일들에서 조금씩 여유가 생긴다. 반죽을 열심히 치대고 있는데 아이가 와서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나름 힘을 주다 보니 온몸의 에너지를 끌어 쓰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이에게도 그런 느낌이 전해졌나 보다.     

“아니, 반죽을 만지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안 들어서 좋은데.”

아이도 거들었다. 원래 자기가 힘이 세다며 열심히 반죽을 조몰락 거린다.      

 식빵


우유와 설탕, 달걀, 식물성 기름, 드라이이스트에 밀가루가 더해진 식빵 반죽은 한 시간 발효에 들어갔다. 어둠이 찾아올 5시 무렵이었다. 저녁밥을 하다 말고 다시 반죽을 살피고 세 덩어리로 나눈 다음 가스를 빼고는 50분을 따뜻한 곳에 두었다.     


그렇게 해서 빵이 다 구워진 건 8시가 다 되어서다. 제법 잘 부풀었지만 어딘지 부족해 보였다.  5분 정도를 더 구우면 좋을 것 같지만 기다리는 아이가 생각나 마무리했다. 아이는 어느새 오븐 여는 소리를 들었는지  빵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방문을 열고 식탁으로 와서는 뜨거운 빵을 잘라 크림을 발랐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맛이다. 마스포카네치즈에 꿀까지 더했으니 은은하게 다가오는 달콤한 부드러움은 다른 말이 필요 없다.


밥 같은 빵이 생겼다. 내일까진 무엇이든 이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샌드위치, 그냥 먹기, 토스트까지 생각하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식빵은 이름처럼 밥 같은 빵이다. 밥이 없으면 왠지 허전하다. 밥이 밥솥에 있을 때는 음식을 하지 않아도 든든하다.      


빵에도 이런 마음이 드는 날은 식빵이면 될 것 같다. 밥 하는 일은 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언제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다. 딸랑이 압력밥솥이 절반 이상을 해 준다. 빵은 오븐이 도와주지만 내가 책임져야 할 몫이 더 크다. 재료를 계량하고 반죽하고, 다시 부풀어 오르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중간마다 확인해야 할 것이 꽤 있다.     


아직은 같은 방법으로 해도 매번 빵 맛이 다르다. 어느 부분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아서 고민하는 과정이 단계별로 필요하다면서도 그때뿐이다. 밥만큼 빵이 절실한 건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밥 하는 일처럼 빵 굽는 날을 기대한다. 그러면 정말 밥 대신에 빵 먹는 일이 편해질 것 같다. 


어느 날은 식빵을 열심히 굽다가 마트나 빵집에 가지런히 포장되어 있는 그것을 보고 허탈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자꾸 돌고 돌아가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그럴만하다고 느끼는 건 빵이 다 만들어졌을 때보다 준비하고 움직이는 동안 생기를 찾기 때문이다.     


다 구워진 따뜻한 빵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전까지 편안했던 마음이면 괜찮았다. 아직은 한참이나 모자라지만 내 손을 거쳐 식빵으로 와 준 것에 감사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