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듯 다르게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 있다. 김밥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어릴 적에는 소풍 때나 먹었다.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분식집을 찾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찾는 건 흰 플라스틱 타원형의 접시에 담긴 김밥이었다.
어른이 돼서도 어디서든 김밥이 보이면 반갑다. 주부가 된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김밥을 만다. 별 반찬이 없다는 이유를 대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니 마음이 간다.
김밥을 말다가 불현듯 오래전 어디선가 봤던 묵은지말이가 생각났다. 언제부턴가 그 맛이 궁금했는데 지금이 그때다 싶었다. 해를 보낸 묵은지를 씻어내고 흰 밥을 잘 펴 놓은 다음 달걀과 유부 조림을 올리고 돌돌 말았다.
김이 주는 푸석거림 대신 단단하고 묵직한 게 내 손을 거쳐 점점 긴 둥근 덩어리가 되어갔다. 소금에 절여지고 그 위에 양념을 발라 일 년 동안 숨죽여 지내던 배춧잎은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무엇이라도 감싸 안을 만큼 힘을 가졌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김치말이 밥 한 줄이 탄생했다. 김밥의 매력은 먹는 재미 이전에 둥글게 잘랐을 때 모양이다. 이것 역시 썰었더니 흰 밥이 선명하게 들어오면서 예뻤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어서 더 그랬다.
한 조각을 들어 맛을 보는데 아삭하는 김치 소리가 제일 먼저다. 그다음은 담담함에 밥맛이 어우러진다. 넘치지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 함이었다.
새로운 걸 발견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 누구에게 바로 자랑하고 싶다. 나를 만족시켜 주는 별 것 아닌 작은 시도였다.
일상이 다르게 다가오는 건 이처럼 반복적인 것에서 벗어나 다른 방법으로 해 보는 작은 움직임이 아닐까? 김을 펼쳐놓던 일에서 묵은지 한 조각을 들었을 뿐인데 모든 게 달라진 기분이다. 오랜 시간을 보낸 묵은 지가 주인이 되어 작은 접시하나에 가득 차 있다.
이런 날은 내게 찾아오는 즐거움을 오롯이 담아둔다. 나를 기쁘게 해 주는 일을 매일 먹는 밥에서 찾았다. 그러고 보면 멀리서 특별한 걸 찾으려고 애쓰기보다 주변을 자세히 바라볼 때 다른 세상을 만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