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이어진 음식
어제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오후부터 추워지더니 바람 소리가 수상할 정도다. 아이들은 일기예보에서 눈 온다는 소리를 듣고 눈이 지겹다고 난리다. 남편은 대설주의보가 내려지면서 자정까지 비상근무다. 언제부턴가 눈을 그리 반기지 않게 되었다. 삭막해졌다 여기면서도 날씨로 인해 불편한 가족들을 보면 눈 오는 날은 갑자기 장애물이 생긴 느낌이다.
새벽부터 눈이 떠진다. 밖을 보니 눈이 제법 쌓여있다. 휴대전화 진동음이 울리더니 대설경보를 알리는 재난문자다. 예상되었던 눈 오는 하루가 될 듯하다. 옷을 따뜻하게 입고 부엌에 들어서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콩국’으로 정했다.
일주일 전에 친정에 다녀오면서 엄마에게 콩가루를 얻어왔다. 추운 날 따뜻한 국물과 더불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이만한 게 없다. 된장 담는 우리 콩을 볶지 않고 그대로 갈면 연한 연두색 가루가 된다. 이걸 물에 개어서 되직하게 만든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한 숟가락씩 떠서 놓게 되는데 이때 무채를 썰고 함께 끓인다.
이 국을 잘 만드는 비결은 간단하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중 약불에서 뭉근히 끓이면 된다. 혹여나 단번에 끝내기 위해 센 불로 달려갈 경우에는 주변으로 넘쳐버린다. 저어주거나 맛을 볼 필요 없이 15분 정도를 그대로 두고 굵은 천일염을 취향껏 넣어 간하면 끝이다. 무가 없다면 배추나 미역을 조금 넣어도 된다.
콩국은 어릴 적 엄마의 부엌에서 어깨너머로 배웠다. 과수원 일로 바쁘던 초봄과 가을, 겨울 사이에 찬 없는 시골 밥상을 채웠다. 어른들은 이만한 게 없다며 맛있게 먹었지만 난 밍밍한 그것에 별 감흥이 없었다.
중년인 지금의 내 나이가 그때의 부모님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특별하지 않아서 더 특별하다. 쨍한 햇볕이 들어오는 강렬한 인상은 없지만 먹고 나서 편안하다. 한 그릇 안에 담긴 은은한 부드러움이 콩국의 백미다.
콩국은 누구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들어주는 포근한 이를 떠올리게 한다. 맛을 좋게 한다는 이유로 어떤 것을 더하는 일을 삼가도록 하는 음식이다. 혹여나 우리가 아는 조미료를 첨가하려는 시도는 적극 말리고 싶다. 절대 그것으로 제맛을 찾을 수 없다. 단지 그대로 두고 기다려야 한다.
엄마의 밥상에 올랐던 음식을 내 손으로 만들 때면 다른 감정들이 밀려온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이거 한 그릇 먹고 나면 편안해서 살 것 같다.”
배추된장국과 잘 익은 늙은 호박과 함께 끓여낸 갈칫국 등 몇 가지 음식을 먹고 나면 부모님은 종종 이런 말을 감상평처럼 남겼다. 이 말의 속뜻이 아득하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날이다.
콩국에 익숙했던 그땐, 온 가족이 여유 없이 지내던 생활이었다. 아침에는 아이들은 학교로 부모님은 과수원에 가야 해서 서둘렀다. 저녁에는 일하다 때를 놓치는 일이 잦았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숟가락을 드는 날 콩국은 술술 넘어갔다.
콩국은 빨리 먹어도 탈 나지 않았고, 한 끼의 식사로 손색이 없었다. 찬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을 보는 일이 가뭄에 콩 나듯 하던 시절, 집에서 대부분 콩 농사를 지었던 탓에 콩가루를 마련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콩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몸에 좋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콩국 한 그릇은 소박한 에너지원이었고, 어려운 살림에서 빛나는 슬기로운 생활이었다.
우리 집 작은 솥에 콩국을 끓인 날이면 엄마는 종종 점심에 먹을 것으로 챙겨갔다. 밥 먹자는 아버지의 말에 엄마는 적당한 돌 두 개를 세우고 초간단 아궁이를 만들었다. 여기에 밭에서 쓰는 전용 솥에 국을 붓고는 지천으로 널린 작은 나뭇가지를 넣고 불을 때고 데웠다.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이면 콩국 후루룩 서너 번으로 점심을 마치고 바로 귤 따기에 들어갔다.
밥을 먹으며 생각이 절로 펼쳐지는 날이 있다. 나를 키운 수많은 시간 속에서 함께했던 음식이 오르는 날이 더욱 그러했다. 이때는 자연스레 삶의 순간들을 돌아보게 된다. 의도하지 않아도 나와 연결된 먹거리 앞에 서면 나를 거쳐간 일들이 스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결국 나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