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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Dec 26. 2023

돈가스를 바라는 서로 다른 생각

저녁 메뉴 혼란기

“저녁에 돈가스 먹자.”

“그래, 알았어 돈가스 먹자.”

아침부터 아이는 저녁에 먹고 싶은 걸 말했다. 난 그 돈가스가 우리 동네 프랜차이즈에서 주문해서 먹는 것으로 여겼다. 만들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왠지 하기 싫다. 큰 등심을 사다가 썰고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다시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도 망설여진다. 손에 밴 고기냄새와도 거리를 두고 싶다.     


아이가 모의고사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돈가스 다 됐어?”

“어? 거기 있잖아. 주문하려고 했는데.”

“그래? 난 엄마가 해주는 게 먹고 싶었는데… 요즘 들어 파는 건 느끼해서.”


순간 아차 싶었다. 난 아이가 전문가의 손길로 바삭하게 튀겨 내는 걸 좋아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녁 식사 30분 전쯤에 주문하고 가지러 갈 계획으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아이의 목소리와 눈빛에선 내 손을 거친 그것이 진심으로 먹고 싶은 마음이 담겼다. 이제 어떻게 해야지 갈등이 일었다. 밖은 이미 깜깜해졌고 시계는 밥 먹을 때로 빠르게 달려간다.      

엄마표 돈가스 한상 

무엇을 고민하거나 헤맬 여유가 없다. 빠르게 선택해야 한다. 

“알았어. 금방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난 엄마니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점퍼를 꺼내 입고는 동네 마트로 갔다. 고기 판매대를 훑어보니 육전용으로 썰어놓은 돼지고기 등심이 보였다. 그것이면 돈가스로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내 손이 이리도 빨랐을까 싶을 만큼이다. 얇게 저며진 고기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 밑간을 했다. 밀가루를 묻히고 달걀 물, 빵가루 순서로 입혔다. 그리고 적당히 온도가 올라간 팬에 고기 조각을 떨어트렸다.   

  

작은 물결을 이루며 고기가 튀겨진다. 다행인 건 고기 두께가 얇아서 순식간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집에서 돈가스 만들기를 꺼리는 건 기름온도를 알맞게 유지하면서 안팎이 잘 익도록 하는 게 어려운 것도 한몫한다.


그래도 엄마표가 좋다는 생각에 온 집안은 기름냄새로 진동할 정도로 요리하지만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할 때도 많다.  한두 번 사다 먹으니 간편해서 좋다. 그러다 서너 번을 넘겨 갈 무렵 질려왔다. 기름에 빠졌다 나온 음식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불편했다. 아이도 나와 같은 느낌이었나 보다.   

   

오랜만에 집안에 기름 냄새다. 동시에 접시에는 돈가스 10조각이 쌓였다. 아이는 양배추 샐러드도 찾았다. 엄마가 보내준 무농약 제주 양배추에 양조간장과 마요네즈, 설탕과 참깨를 넣은 소스를 만들어 끼얹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저녁 한바탕이 끝났다. 오랜만에 텔레비전 앞에서 두 아이가 밥을 부지런히 먹는다. 밥 두 공기를 비웠다. 내가 최선이라 여겼던 것과 아이가 생각했던 것 사이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틈이 있었다.      


아이가 돈가스를 얘기했을 때 잘 됐다 여겼다. 동네에서 등심 두 조각과 치즈 한 조각을 시켜주면 끝이니 내가 할 일이 없다. 이렇게 단순히 정리해 버렸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돈가스’라는 음식 하나를 두고 우리 둘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단 이건 다른 일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내가 아는 게 전부 맞다고 단정 짓고 결론 낸다. 저녁을 보내면서 다음에는 원하는 것을 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주부의 위기대응 능력이 빛을 발하는 저녁이었다. 아이들이 감탄하며 먹는 모습만으로 정신없음이 보상받는 기분이다.  이런 날은 매번 밥을 잘 챙기는 나를 보며 놀라며 한편으론 톡톡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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