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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Dec 19. 2023

파운드케이크 일기

잘 알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중력분 170g, 우유 20mL, 식물성기름 80mL, 설탕 3숟가락, 소금 아주 조금(1g), 베이킹파우더 5g, 달걀 1개, 바나나 2개, 아몬드 조금.  바나나파운드케이크에 필요한 재료들이다. 나흘이 지난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난다. 


집에는 검은색 점점 이가 생긴 바나나 두 개가 있다. 이것으로 뭐라도 만들어야겠다. 토요일 아침은 어제저녁부터 내린 눈으로 쌀쌀하다. 도로에는 얇게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정도지만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 위에는 눈이 제법 쌓였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빵이 생각났다.  

   

유튜브를 검색해서 내게 부담 없는 바나나 파운드케이크 만드는 법을 배웠다. 노트북을 식탁 위에 놓고 화면을 열심히 보면서 재료를 준비했다. 밀가루를 계량하고 우유에 식초를 한 숟가락 넣어 버터밀크를 만들었다. 큰 스테인리스 볼에 달걀과 설탕, 기름을 넣고 열심히 저었다. 다시 버터밀크를 넣었다. 밀가루를 넣은 다음에 꾹꾹 눌러 으깬 바나나를 더했다. 크기가 부담스러워 절구에서 대충 조각낸 아몬드를 마지막으로  섞었다. 기름종이를 깐 파운드 틀에 반죽을 고르게 담고는 180도 오븐에 45분을 구웠다.     


토요일 오전에  첫 바나나 파운드를 만들고 저녁 8시쯤에 두 번째로 코코아가 들어간 것을 구웠다. 일요일 아침은 왠지 흰 눈이 쌓여 있을 것 같다. 늦잠을 자도 맛있는 게 있으면 여유가 절로 생기면서 기분이 좋다. 그때를 위한 것이었다. 바람 소리와 함께 흩날리는 눈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세 번째 만든 당근 바나나파운드 

빵이 나오는 과정을 충분히 알아가니 마음이 가볍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저 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끌려 다시 케이크를 만들었다. 아침에 보니 밤을 보낸 온기 사라진 케이크는 제법 단단해져 썰기에 적당했다.  밥 하기가 싫어서 우유 한잔과 함께 아침으로 먹었다.  


일요일 오후 무렵에는 어제 만들어둔 케이크가 아주 조금 남았다. 동네 마트에서 할인하는 당근 5개를 1950원에 샀다. 운동 삼아 나간 산책길에 잠시 들렀는데 뜻밖의 행운이었다. 요즘 들어 눈이 빨리 피곤해지는 까닭에 당근을 열심히 먹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케이크에 당근을 더했다.     

바나나 당근 파운드를 만들었다. 이틀 사이에 세 번째로 만드는 것이니 망설이지 않고 차분히 움직였다. 빵 만드는 일에 진심인 이의 노하우를 따라 해 보니 조금씩 내 것이 되어간다. 빵을 만들면서는 만족감이 제일 컸다. 이번에는 앎의 즐거움이 다가왔다.     


그동안도 꽤 여러 번 파운드를 만들었지만 직감에 의지했다. 그런대로 괜찮은 빵이 나올 때도 있지만 정반대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고수들의 방법을 참고해서 하니 든든했다. 수학 문제 풀 때 어쩌다 찍었을 뿐인데 정답이었던 찜찜함을 털어낸 기분이랄까? 선생님께 배워서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선명함이었다.    


모르던 것을 열심히 하라고만 하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싶다. 노력해도 어느 부분에서 오류인지 판단이 안 서니 잘하기 어렵다. 당연히 의욕도 없다. 머릿속으로 정리가 되고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되뇌게 되는 것. 안다는 것은 결국 여러 가지와 관계하고, 기억하고, 살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기도 했다.      

살아가는 일도 결국 아는 것과 통한다. 자신의 상황을 모르면 그저 화가 나고, 타인을 탓하거나 도망치기 쉽다. 그때 나를 둘러싼 것,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때 해법을 간단하게 마련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 빵을 만들 땐 막연하게 귀동냥으로 얻은 정보만으로 시작했다. 빵이 다됐다고 '땡' 하고 울리는 오븐 타이머 소리에  달려가 보면 착잡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파운드케이크를 만들 수 있게 된 건 그동안 밀가루를 조몰락거리던 여러 날들이 있어 가능했다. 


전문가들의 레시피를 세심히 들여다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도 불만족을 충분히 경험한 뒤였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알고 싶은 빵들이 하나씩 늘어난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바나나 파운드케이크를 친구에게 선물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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