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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an 31. 2024

부풀지 않은 찐빵 사이에서

다음을 그리기

성산포에서 오랜만에 찐만두를 먹었다. 한겨울이지만 유채꽃이 핀 곳이 있다면서 큰아이가 제주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겨울의 한가운데에 바람에 흔들리는 유채꽃과 돌담 넘어 파란 바닷물은 정신을 깨워주었다. 언젠가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봤던 아이슬란드 바다가 떠올랐다.     

성산포 바다와 유채꽃

바람이 몹시도 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지만 세찬 바람이 날리는 그날 풍경은 낯설었다. 그곳에는 봄과 겨울이 함께 머물고 있었다. 그러다 점심을 먹기 위해 이곳저곳을 살피다 지나는 길에 만났던 ‘별 국수’라는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밥상이 얼마나 푸짐한지 밖에서 먹는 밥에 관심이 없다. 그러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그곳에서 예상치 않은 넉넉한 인심이 담긴 국수 한 상을 받았다. 잔치국수와  고기국수를 시켰고, 마지막에 만두를 추가했다.      

찐빵 만두 

오랜만에 다른 이가 만든 찐만두를 먹었다. 김치만두였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아이들은 집에 가면 다시 만두를 빚자는 의견을 내었다. 그렇게 해서  만두와 비슷한 느낌의 다른 스타일에 도전했다. 


찐빵만두를 만들기로 했다. 대충 알 것 같은 레시피를 생각했다. 그러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검색해 보니 그림이 그려졌다. 발효 없는 것을 선택했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밀가루에 이스트,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미지근한 물에 설탕과 드라이 이스트, 소금이 들어갔다. 만두소는 언제나처럼 묵은지와 돼지고기 간 것, 양배추, 청양고추, 대파에 소금과 마늘, 생강가루, 굴 소스로 간해두었다.   

  

290g 밀가루로 만두 8개를 만들었다. 내가 참고한 이의 동영상에는 분명 잘 부푼 야채찐빵이었는데 내 것은 그와 달랐다. 어딘가 되다만 느낌이었다. 뜨거울 정도로 따뜻하면서도 폭신폭신한 만두 찐빵을 원했다.   


미지근한 물에 이스트와 필요한 재료를 섞으며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맛있다고 하지만 난 그저 그랬다. 분명히 성공한 요리법을 따라 했는데 달리 나오는 걸 이해하기 어려웠다.    

  

처음이어서 그럴 수 있다면서도 아쉬움이 컸다. 그런 마음이 며칠 이어졌다. 그때부터 다른 이들의 비법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발효시간과 계량한 양을 살피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러다 보니 다음에는 잘할 수 있을 거란 혼자만의 기대감도 살아났다.     


한편으론 집에서 먹는 것임에도 이토록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이 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하고 찾아보았다. 집에서만큼은 여러 가지가 허용되는 것은 당연한데도 말이다.     

그건 내게 지금 필요한 유연함과 연결된 것 같다. 어느 선생님이 큰 무리 없이 지내기 위해선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허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건 잘되고 그렇지 않음을 크게 연결 짓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다음에는 좀 더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다른 형태로 해보고 또 잘되지 않으면 그다음을 기약해도 무리가 없다.     

이리도 찐빵의 부푼 정도에 집착하는 내가 한편으론 안되었다 싶다. 당시에는 이런 마음조차 일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 놓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편했으니 한 발 떨어져 보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주일이 지날 즘에야 원하는 걸 알아가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마음을 잡아본다. 

“이렇게 해보고 안되면 다음에 또 저렇게 해보면 되는데 뭘 그리 서두르니. ”

엄마는 오래전 집 정리정돈이 어려워 전문가를 부르겠다는 내게 이 말을 건넸다. 그때도 지금도 당연하지만 받아들이기까지는 단순하지 않다.

   

집 정리와 음식을 만드는 일이 매우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다. 나름의 노하우를 지녀야 하는데 그걸 위해선 경험이라는 축적된 시간이 필요하다. 찐빵만두도 이제 첫걸음이다. 서너 번 하고 있으면 한 번쯤은 기다리던 그것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다그치기보다 꼼꼼히 살펴봐야겠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나를 이루는 중요한 정서를 만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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