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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28. 2024

셀프 케이크 유감

생일 준비

생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동안도 생일 하면 그리 특별하게 지낸 게 아니기에 고민할 게 없지만 신경 쓰이는 건 케이크 때문이었다. 남편이 며칠 전에 케이크를 사 온다고 했는데 말렸다. 어디에서 사 올지 뻔하고 그곳에서 파는 게 어떤 맛인지 잘 알기에 그랬다. 다른 한편으론 상당한 케이크 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내가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생일 하루 전에는 동생이 갖고 싶은 걸 물었다. 솔직히 별로 없다. 동생에게는 늘 뭘 받기만 하기에 생일이라고 무얼 바라는 것이 이상했다. 

"언니 그럼 케이크라도 하나 보내줄게. 맛있게 먹어."

"아니야. 이번엔 내가 만들어 보려고."

동생의 마음만 받기로 했다.  


그러다 결국 그날이 되었다. 케이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귀찮다. 생일에 왜 케이크를 먹어야 하는지부터, 직접 만들겠다고 나선 것까지 뭔가 뒤죽박죽이다. 엉성하지만 집에서만 먹기에 괜찮은 케이크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건 지난 크리스마스부터다. 


그때 마음먹은 게 가족들의 생일이면  부족하지만 내 손으로 케이크를 준비해야겠다는 것. 가끔 디저트로 먹던 케이크가 의미를 갖기 위해선 다른 때와는 구분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내 생일에도 꼭 그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멀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다가왔는데 그때 품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귤 생크림 케이크

뭉그적거리다 오후 무렵에야 움직였다. 이미 큰소리를 쳐 놓고 그냥 넘기기엔 불편해서 아주 적당히 부담이 없는 선에서 하기로 했다. 원형틀 대신 20센티미터 파운드틀의 사각 작은 케이크로 정했다. 달걀 3개를 깨트려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서 머랭을 만들었다. 밀가루와 말차가루를 준비해 둔 다음 큰 볼에 반죽에 나섰다.      


가루류와 설탕, 식물성기름, 우유 조금을 섞어 놓았다. 마지막 단계에서 머랭을 두세 번에 걸쳐 나누어 반죽이 잘 부풀도록 했다. 그런데 주걱이 이상하게 잘 움직이지 않는다. 세심하게 계량하지 않아서 인지 밀가루양이 많았다. 있는 힘을 다해 손을 움직이며 뭉친 반죽을 풀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빵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된다. 조금 정성을 들일 것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문제 해결을 위해 재료를 더할까 고민하다 복잡해질 것 같아서 그대로 하기로 했다.     

40여 분을 구우니 아주 폭신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케이크 시트가 나왔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건 밤 10시는 지나야 하기에 서두를 일도 없었다. 아이와 저녁을 먹고는 그때서야 생크림을 만들었다. 케이크의 하이라이트는 크림 위에 무언가를 올리는 것. 아침에는 딸기로 마음먹다 갑작스럽게 내린 비 때문에 사러 가는 일이 망설여졌다. 


오후에 나가서 사 오려했지만 막상 그때가 되니 가기가 싫다. 내 케이크인데 없으면 어때하고 귤을 떠올렸다. 엄마가 집에서 보내준 한라봉과 황금향, 그리고 이름 모를 귤이 있는데 그것 중에서 괜찮은 것으로 골라서 하기로 했다. 8시 무렵에 빵 위에 크림을 바르면서 마지막 케이크를 정리했다. 어떤 맛일지, 다른 때보다 설탕은 충분히 넣었으니 그거면 됐다 싶었다. 


다른 이에겐 정성이란 걸 당연하다 여기면서도 정작 내겐 작은 배려도 하지 않는다. 대충 만들어진 케이크는 귤의 빛나는 색으로 부족한 것들을 감춰주었다. 속으로 투덜대며 꾸역꾸역 만든 케이크 앞에 앉으니 조금 부끄러움과 어색함이란 혼자만의 감정이 흐른다. 그 마음이 참 이상하다. 나를 위하겠다고는 하면서 정작 그러해야 할 시간에는 실천하지 않으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동안 익숙해진 내 생활의 단면이었다. 말은 가벼워서 때때로 앞서 가지만 실천하는 일은 무겁고 더디다. 케이크는 생각보다 맛이 좋아서 다행이었다. 이것이 완성되기까지의 내가 했던 일이 아쉽고 씁쓸하다. 나를 잘 품는다는 건 괜찮다라며 받아들이기도 해야지만, 느슨해지지 않고 행할 줄 아는 게 아닐까 싶다. 케이크가 맛있고 예쁘다는 아이들의 얘기가 내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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