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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26. 2024

빠져든 밥맛

유부초밥 

 “엄마 우리 반 친구는 아침에 밥 대신에 사과 먹고 온다는데.”

아이가 가끔 이런 말을 하면 모르는 그 집이 부럽다. 우리 집은 이런 날은 거의 없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 번도 없었다는 게 거짓말 같은 사실이다.     


매일 밥을 먹는다. 가끔 빵으로 대신하기도 하지만 올해부턴 그런 적이 없다. 고등학생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수업 중 꼬르륵 소리에 집중할 수 없다고 얘기하면서부터다. 빵을 먹는다고 해서 달랑 그것 하나만 먹는 게 아니다. 샐러드에 다른 것까지 함께하니 밥보다는 열량이 높을 것 같은데 아이의 주장에 동의하긴 어렵다.       

그래서 밥을 다르게 먹기 위해 가끔 고민한다. 밥을 기본으로 하지만 보통의 날과는 다른 유부초밥으로 정했다. 김밥을 좋아하기에 그 맛을 좌우하는 유부는 언제나 냉동실에 넣어두는 음식 재료다. 


오랜만이었다. 사각 유부를 대각선 방향으로 자른 다음 뜨거운 물에 데쳐서 차가운 물에 두세 번 헹궈낸다. 기름기가 줄어든 그것을 손으로 꽉 짠다. 깊은 팬에 양조간장과 식초, 맛술, 올리고당에 물을 조금 넣고 보글보글 끓어가면 유부를 놓고 서서히 졸이기 시작한다. 주걱으로 유부를 꾹꾹 눌러 주면서 소스가 천천히 흡수되도록 하고, 한 김 식히면 중요한 유부준비가 끝난다.    

 

밥을 지었다. 이모가 보내준 경기미인데 찹쌀 같은 멥쌀이라고 했다. 그래서 밥을 할 때 물을 조금 넣어야 맛이 좋다고 알려주었다. 밥이 중심이니 다시마 두 조각을 밥물 위에 올리며 다른 날보다 정성을 들였다. 그런 바람을 담아서인지 밥이 고슬고슬하다. 

유부초밥

큰 그릇에 밥을 담고 참기름을 넣고 버무리기 전에 한 숟가락 떠먹었다. 쫄깃하면서도 은은한 단맛이 퍼진다. 밥이 이런 맛이구나 싶은 느낌이 순간 다가온다. 여느 때처럼 밥 만으로 할까 하다가 아쉬워 김치를 송송 썰어 매실청 한 숟가락을 넣고 볶았다. 다시 달걀 두 개로 스크램블에그를 만들었다.  

   

흰 밥에 참기름을 넣고 버무린 다음 각각 김치와 달걀을 넣고 섞었다. 갈색으로 물든 유부에 밥을 꼭꼭 눌러 담은 다음 양손으로 둥근 모양을 만들며 힘을 주니 밥이 서로 잘 붙어서 단단해진다.  

   

그때 밥을 누르는 기분이 참 좋다. 한참 전 아이들에게 슬라임라는 물렁물렁한 장난감이 유행인 적이 있다. 시내버스를 탔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학생이 그것을 계속 조몰락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그것을 보는데 이상하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때까지 그것을 만졌을 때 느낌을 몰라서 하는 생각이었다.     


얼마 지나서 아이가 그것을 갖고 놀 때 한번 해 봤다. 말랑말랑하면서 완전히 모양이 흐트러진 듯하지만 다시 살아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준다. 어릴 적 아기가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다가가 엄마의 살을 만지던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은 그때 아마 부드러운 장난감을 만지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미뤄 짐작했다.     


유부초밥을 만드는 동안 밥을 대하는 내 기분이 이와 비슷했다. 밥과 유부 조각을 오가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동안 흰쌀밥은 어떤 형태로든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었다. 그리고 쌀이 지닌 점성이 더 강해지면서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쩌면 부엌에서만 가능한 내 마음대로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유부초밥을 만드는 건 몰입의 시간이었다.     


온 식구가 이것으로 아침을 양껏 먹었다. 다른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른 시간이라 식욕이 없다는데 우리 집은 예외다. 앞접시에 김치와 달걀 유부초밥을 서너 개 이상씩 담았는데 다들 그릇을 비웠다. 이날 또 알게 되었다. 매일 먹는 밥이라고 하지만 밥은 정말 무궁무진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맛이 별로 일 때가 있는 것 또한 음식인데 밥이 주인공이 되는 날은 기꺼이 내 마음을 알아준다. 


밥은 다른 것과 잘 어울리면서도 밥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유부초밥에 아무리 맛나고 진귀한 걸 넣어도 밥이 없다면 완성될 수 없으니 말이다. 밥이 지겨운 날 유부라는 친구를 불러와서 밥을 새롭게 해석했다. 어제 아침과는 달라진 식탁에서 오랜만에 만난 그 밥 덕분에 웃었다. 다른 것 하나 올려놓지 않고 덩그러니 그것만 있어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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