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과 미루기
“다음에 해야지.”
엄마가 보내준 것을 나중에 먹어야겠다는 의미다. 집에서 보낸 택배 상자를 열어 정리하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적당히 습기를 먹은 터라 미나리와 부추, 붉은 치커리와 돌나물을 새 종이로 바꿔놓고 김치냉장고 야채칸에 두었다.
여기서 다음이란 언제를 말했던 걸까? 내가 그렸던 계획이지만 선명하지 않다. 그러니 주말을 보내고 나서 월요일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봄비가 제법 거세다고 했는데 축축 내리다 멈췄다. 초여름 같던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티셔츠에 니트까지 껴입고 거실 모퉁이에 쿠션을 등받이 삼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뭐 하고 있니?”
“음 그냥 있지.”
“토요일에 도착한 거 오래 두지 말고 싱싱할 때 빨리 먹어라.”
“응 엄마 부추는 양이 꽤 되더라고. 부추김치하려고.”
“시간 지나면 물 생기고 노랗게 이울어 버리니까 빨리해야 한다.”
엄마의 전화는 잠깐 이었지만 강렬했다.
그것도 잠시다. 또 나만의 시계 속으로 들어간다. 엄마에게 나중에 알아서 한다고 하면 재촉할 것이니 임시방편으로 바로 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 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람의 의지가 이리도 약한 것을 내게서 알게 되었다.
오후 내내 집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 보니 막내가 돌아오고 저녁 시간이 다가온다. 그때 별안간 부추 상태가 어떤지 궁금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엄마의 말이 맞았다. 싱싱했지만 모두 다 그러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상한 조짐이 조금씩 보였다. 긴 부추 가닥이 하나씩 드문드문 녹아내리는 듯 활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다른 선택이 없이 부추 전부를 꺼냈다. 부엌 바닥에 신문지를 펴놓고는 궁둥이를 붙였다. 처음 받은 날 바로 했으면 이런 수고로움이 없겠지만 이젠 이미 지나간 일이다. 손질하지 않고 하려니 영 찜찜하다. 부추 한 가닥씩 들어 살폈다. 색이 변한 것들은 잘라내었다. 처음에는 이걸 언제 다 정리하지 싶었는데 조금 지나니 끝났다.
부추를 두 번 씻고는 소쿠리에 놓고 물기를 뺐다. 이제 양념을 놓고 비벼내면 끝이다. 이제부터는 손 갈 일이 별로 없다. 지난겨울 남은 김장 양념을 꺼내어 이것에 멸치액젓과 매실청을 더하면 된다. 집에 있는 햇양파의 아삭함이 좋아서 반개를 채 썰어 놓았다.
큰 양푼에 재료를 모두 놓고 버무렸다. 맨 처음 내가, 그다음은 숙제하는 막내까지 가세해서 맛을 봤다.
“엄마, 김친 갓 했을 때가 젤 맛있어.”
아이는 뭘 아는 것처럼 한마디 뱉고는 가버렸다.
숨 죽은 부추는 통에 담고 나니 절반으로 줄었다. 식탁 위에 그것을 두었는데 언제나처럼 기분 좋은 뿌듯함이 머문다. 종종 이런 일이 반복이다. 해야지 하고 맘만 먹다가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
이번처럼 시간이 좀 지났지만 그래도 실천하는 경우는 손뼉 칠 만하다. 잊고 있거나 별다른 의욕이 없을 때 타인의 짧은 한마디가 콕 와서 박히면 가속도가 붙는다. 엄마의 전화처럼 말이다. 단숨에 해 버린 부추김치도 그렇게 해서 가능했다.
미루는 일은 게으름의 습성과 연관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헤아림이나 살펴보기, 고민하기 등과 관련 있어 보인다. 가볍게 바로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혹시나 하는 염려가 끼어들기도 한다.
이때 생각하기가 자리 잡는다. 그러는 동안 복잡해지고 시간이 지난다. 무엇이든 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아니면 멈추면 그만이다.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논리는 현실적으로는 간단치 않다.
바로 행동하는 일은 결과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따리 붙기 시작하면 어렵다. 부추김치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은 손을 움직이면 그만이다. 그렇지 않은 게 대부분이겠지만 우선 해 보는 것에 한 표를 던진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그 김치를 접시에 담을 때마다 '그때 잘했어'라고 내게 말했다. 매번 머뭇거리는 일이 많은 내게 그냥 하라고 말하는 중이다. 그냥 슬쩍해 보는 것, 그것이 나를 가볍게 하는 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