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를 따라 하는 일
떡볶이를 고등학교 때부터 만들었다.
“가래떡 굵은 거 있잖아. 네가 그걸로 떡볶이 만들어 줬는데 정말 맛있었어.”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때를 친구는 소환했다. 그러고 보니 떡볶이와 인연은 맛보는 것보다 만드는 일이 앞섰다.
그 후로 가끔 만들었지만, 떡볶이를 내놓는 일이 익숙해진 건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무렵부터다. 뭔가 입이 심심한 날에는 간식으로, 때로는 한 끼 식사로 이것을 밥상에 올렸다. 그럴 때마다 아쉬움이 남았다. 프랜차이즈 떡볶이를 언젠가 아이가 먹고 싶다 해서 시켰는데 맛이 대단하다. 별것 아니지만, 집에서 만든 것과는 묘한 차이가 확실히 드러났다. 그건 소스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습관처럼 고추장과 설탕 등을 적당히 넣고 만들던 방식을 고수했다. 우연히 아이가 건넨 레시피를 경험하니 떡볶이를 다시 알게 된 기분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그래서 끌리는 맛은 적절히 다듬어진 국물맛에 있었다.
“엄마, 친구가 정말 맛있는 소스 레시피라며 보내줬어. 엄마한테 보낼 거니까 점심때 그대로 한번 해 봐요. 친구가 정말 적극 추전했거든.”
아침에 아이가 학원에 가면서 한마디 툭 던졌다. 한참 집안일을 하다 깜빡했는데 우연히 메시지를 확인했다. 고추장(3스푼), 고춧가루(1.5스푼), 카레카루(2스푼), 설탕(2.5스푼), 후추 조금, 간장(1스푼) 작은 이미지와 이렇게 적혀 있다.
소스는 큰 그릇에 양념 재료를 넣고 잘 섞어 준비했다. 웍에 물이 끓기 시작하자마자 그것을 다 넣고 잘 저었다. 굵은 쌀떡을 넣고 푹 끓이는데 적당히 익어서 맛이 스며들 무렵에야 숟가락을 들어 맛봤다. 이렇게 기분 좋은 맛이 있구나 하고 혼자 놀랐다. 별거 없던 기대가 살아났다.
삶은 달걀과 비엔나소시지를 넣고 자작할 만큼 약한 불에서 조렸다. 내 일은 재료를 적당한 시간에 넣는 게 전부였다. 다된 것을 큰 그릇에 담아보니 얼핏 봐도 전문점에서 나올 법한 떡볶이다. 물과 섞여 자신 만의 붉은빛을 내면서 반짝였다.
국물에 물이 오르니 밥과도 제법 잘 어울렸다. 김자반을 넣어 만든 주먹밥을 곁들였다. 토요일 점심, 휴일이기에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도록 양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잡곡밥으로 만든 그것을 국물에 찍어 먹으니 그것 또한 신세계다. 작은 밥알에 빨간 국물이 순식간에 스며들었다. 솔직히 떡볶이보다 이것이 더 특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봄이라고 기온은 확 올라갔지만 하늘은 찌뿌둥하다. 밖은 뿌옇게 먼지가 쌓인 듯 답답해서 그런지 기분도 덩달아 그저 그렇다. 이런 풍경은 적당히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맛을 당겼다. 조금 먹고 나면 다가오는 떡볶이에 느끼함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하다. 텁텁함이 없으니 단출한 재료임에도 괜찮았다.
누가 이 소스의 환상 궁합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떡볶이를 사랑했거나,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이들의 결과가 아닐까? 집밥이 그렇듯 매번 익숙한 대로 떡볶이를 조리했다. 우연히 알게 된 소스 레시피는 알고 있던 재료들이지만 얼마나 더하고 덜하냐에 따라서 확연히 달라진다는 걸 알려주었다. 소스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키는 양념의 비율이었다.
그동안 내손을 거쳤던 떡볶이 역시 고추장을 많이 넣으면 텁텁해서 고춧가루를 더했고, 설탕은 기본적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다른 건 카레 가루였다. 이 것이 독특한 맛을 내는 비법이라고 추축해 본다. 카레가루는 맵고 달고 짜고 각자가 개성 있는 양념들을 조화롭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하다.
타인의 공들여 만든 그것을 적용해서 요리한 결과 잠깐이지만 행복이 찾아왔다. 이것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한 주를 보내고 다시 같은 스타일로 요리했다. 그럼에도 물의 양 때문인지 처음보다는 살짝 아쉬웠다.
내 것에 갇혀 있지 않아야 나아간다. 뭉뚱그려 똑같다 말하지만 다른 것. 그것을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좋았던 그 맛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한 끗 차이를 아는 세심함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떡볶이를 새롭게 알아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