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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22. 2024

비 오는 날 짬뽕은

시원하다는 맛

비와 국물은 잘 어울린다. 따뜻하게 김이 모락모락 나고 밍밍하지 않으면 좋다. 작년에는 가뭄 때문에 매일 물을 절약해야 한다는 재난문자에 시달렸다. 올해는 봄부터 매주 비가 하루 이틀은 꼭 끼어 있으니 이것 또한 별로다. 이럴 때마다 균형이란 게 참 어려움을 절감한다.   

 

날씨까지 우중충하고 찬기마저 돈다. 아침과 점심은 지났는데 저녁이 문제다. 하루를 잘 보냈다 하려면 이때를 잘 먹어야 하는데 도통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채소를 가득 먹고 싶은 마음에 이리저리 궁리하다 짬뽕으로 정했다. 중식집에서 만나는 것과는 다른 철저하게 내 식대로 해석해서 나온 내 맘대로 짬뽕이다.    


꼼꼼히 재료를 준비하지 않고 집에 있는 채소를 총동원하니 더욱 그러하다. 점심때 김치볶음밥에 넣다 남은 돼지고기 간 것을 넣기로 했다. 양배추와 표고버섯, 양파, 대파, 청양고추, 주키니 호박, 쑥갓을 썰어서 준비했다. 백 짬뽕보다는 고추기름 맛이 나야 제격이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넣고 볶다가 대파에 이어 고춧가루 세 숟가락을 넣고는 매운맛이 나도록 했다. 이 과정이 끝나면 고기를 충분히 익혀주고 채소를 담고 물을 충분히 부은 다음, 한소끔 끓여준다. 육수를 따로 만들지 않아서 집 간장과 참치 액으로 간했다.     

비 오는 날 짬뽕

끓이고 5 분을 훌쩍 지날 무렵부터는 제법 색이 벌게지는 게 짬뽕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중화 면 또는 칼국수 면이라도 있어야 하지만 준비된 게 없다. 면은 국수로 대신하기로 했다. 짬뽕 면보다는 가늘고 쫄깃함이 덜하겠지만 그것 또한 별미라 여겼다. 

 

“이 정도면 짬뽕집 열어도 되겠네.”

면 때문에 잠깐 신경 쓰였는데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의 한마디가 모든 걸 말해주었다. 저녁은 가볍게 먹자고 마음먹었는데 이날은 예외다. 면은 가능한 한 적게 하고, 건더기를 충분히 올린 짬뽕은 다른 생각 없이 먹는 일에만 집중하게 했다. 평범한 짬뽕 한 그릇에 답답했던 속을 뚫어주는 비법이 담겨있나 보다.


내가 이 요리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정도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이 치료를 위해 서귀포에 있는 치과를 아버지와 찾은 날이었다. 매일 과수원에서 지내기에 감으로 물들인 갈옷만 입던 아버지는 그날 남색 정장 바지에 흰색 여름 반소매셔츠를 입었다. 치료가 끝나고 당연히 버스 정류장으로 갈 거라는 예상을 깨고 아버진 길가에 있는 중국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난 당연히 짜장면을, 아버지는 짬뽕을 시켰다.  

    

빨간 국물의 그건 당연히 어른들의 음식이라고 여겼다. 맛이 살짝 궁금하긴 했지만, 숟가락을 들어 맛보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내가 짜장면을 열심히 먹는 사이 아버지도 후루룩 소리를 내며 짬뽕 한 그릇을 비웠다.


“아이 시원하다.”

아버진 그때 이런 한마디를 던졌다. 이 말을 기억하는 건 이후에도 아버지와 한두 번 중국집을 갔는데, 그때마다 아버진 언제나 짬뽕을 시켰고 마지막 국물까지 들이켜고 나면 이 말로 마무리 했다. 아주 오래전 상황이 떠오르면서 그곳의 분위기가 잔잔히 그려졌다. 아버지에게도 도시로 나온 날은 바쁜 시골 생활에서 정말 특별한 때다. 집에 가서 할 일이 태산이겠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이 먼저였을 것이다. 


아버진 다른 건 다 참아도 배고픈 건 못 참을 만큼 밥 먹는 일을 중요시했다. 어린 시절 어렵게 살았기에 먹는 일은 삶의 이유였고 어른이 되어서도 크게 작용했던 모양이다. 한편으론 매일 먹는 밥에서 벗어나 마주한 짬뽕은 쌓였던 피로를 잠깐 잊게 해 주지 않았을까. 그래서 짬뽕은 아버지의 음식으로 기억된다. 


그 후로 어른이 되어선 아버지와 식당에 마주 앉아 음식을 먹어본 일이 별로 없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게 대부분이었고 그리 일찍 이별할 줄 몰랐다. 짬뽕으로 저녁을 해결하니 설거지가 별로 없다. 이게 한 그릇 음식이 지니는 큰 장점이다. 국수 그릇과 젓가락, 반찬 접시 몇 개가 전부다.     


그릇을 씻는 동안 아버지 생각이 한참 머물렀다. 날씨 또한 종일 흐리니 작은 슬픔이 다가왔다. 음식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건 좋다 나쁘다는 가치판단의 영역과는 다른 게 존재한다. 음식의 맛과 분위기 특히 같이 했던 사람이다.      


아버지와 처음 갔던 서귀포 중국집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가끔 그곳을 지날 때면 혼자 그때 저곳 어디쯤이 식당 자리였다고 마음속으로 되뇔 뿐이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이 희미해지는 것처럼 현실의 공간도 사라졌다. 바래버린 풍경과 애써 온 감각을 동원해 되살려 보려는 그때의 추억도 가끔은 내가 만들어낸 게 일정 부분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할 때도 있다.       


이제와 아버지의 ‘시원하다’를 좀 알 것 같다. 지금 내 감정과 아버지의 것이 붕어빵 같지는 않겠지만 어렴풋하게 어느 편에서 닮았다. ‘시원하다’에는 답답함을 날려버리는 순간의 기쁨과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갈증을 포함한다. 여기에 모든 것을 덮어버릴 것 같은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음식이 식도를 타고 지나는 순간 뭉클하게 다가오는 감각을 품고 있지 않을까? 비 오는 날 짬뽕은 그리움과 숨어있던 감정의 한편을 살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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