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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12. 2024

책 봄

함께 읽기의 매력

봄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해 보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만 두었던 일이었다. 그러다 조심스레 한 명 한 명에게 얘기를 꺼냈다. 

“우리 책 한 번 같이 읽을래요.”

몇 번을 망설이다 건넨 질문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레었던 첫 만남은 그렇게 봄이었다. 동네 스타벅스에서 낯선 이들이 얼굴을 마주 보았다. 나와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세명과 책을 두고 만나게 되었다. 책을 읽고 싶지만 늘 뒷심이 부족했고, 꾸준하지 않았다. 한 장 두 장을 넘기다 그만두는 게 일상이었다.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지 않은 독서는 심심풀이로 스쳐 지났다. 그때 생각한 게 함께하는 것.   

   

몇 년 전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날 일이 있었다. 현장에서 펼치는 혁신 교육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었는데 그때 눈여겨봤던 게 연대였다. 알 것 같지만 와닿지 않았다. 한 달 남짓 학교를 오가며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무엇인지 선명해졌다.  

그들은 혼자 아무리 고민해도 힘을 모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같거나 다른 것들을 공유했다. 처음에는 어색했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정기적인 모임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같은 곳을 바라보는 지점이 넓어졌다고 했다.   

   

내 생활에서도 독서를 이런 범위에 두고 싶었다. 내게 찾아오는 공허함과 불안정함을 메꿔줄 수 있는 건 책에 담긴 다양한 경험과 작가의 손끝에서 나오는 생각들이라고 여겼다. 매달 만났다. 어떻게 잘 될까 하는 막연한 걱정은 기우였다.     


모두들 책을 진심으로 읽었다. 혹여나 잊힐까 책 내용이나 느낌을 노트와 수첩에 메모해 두었다. 함께 의견을 나누고 싶은 건 미리 알려서 생각할 시간을 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     

모임에서 공통인 건  건 닮은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이 비슷하지만 서로의 색이 묻어나는 이야기였다. 

“나도 ~누구 씨와 비슷해요.”

의견을 말할 때 시작은 이러했지만 내용은 달랐다.  선택하는 단어가 미묘하게 구분되었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분명한 자신의 관심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지루할 새가 없었다. 그건 우리가 함께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동네를 벗어나 브런치 카페에서 일주년 모임을 했다. 그간 시간이 얼마 지났는지를 돌아보려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리를 태워줄 친구가 기꺼이 시간을 내어 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가본 널찍한 카페는 피아노 음악이 쉼 없이 흘렀다. 파스타와 샐러드, 볶음밥까지 맛있는 음식들로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을 나눴다.    

 

이번에는 일 년을 잘 보낸 고마움으로 그들과 집밥을 함께 하고 싶었다. 얼마동안 고민 했지만 막상 그때가 되니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

“집에서 먹지 말고 밖에서 먹어요. 뭐 그리 힘들게 하려고 해요.”

함께하는 이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편하게 기분전환 할 겸 밖으로 나가자 했다.      


일을 하기 전에 망설인다는 건 고려해야 할 게 많다는 의미다. 이럴 땐 단순하고 편하게 선택하는 게 좋다. 특히 모임 하는 날은 아이가 수학여행을 떠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보내야 하기에 에너지가 부족할 것 같았다. 함께하는 이들 또한 집보다는 싹이 돋아 자라기 시작하는 연둣빛 봄 풍경이 아름다운 밖이 좋겠다 싶었다. 


독서 모임 이름은 <책 봄>. 봄에 책을 읽게 되었고, 책을 본다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다. 이번에 살펴본 책은 김신지 작가의《기록하기로 했습니다》였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건 기록과 연결되었다. 매일 무엇이든 기록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리고 기억이 책 속에서 내 일상과 함께 바라보게 될 때 삶이 깊어진다.


책을 읽으며 나를 고요하게 하는 순간이 많다. 말을 먼저 하고 싶을 때 다른 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재미가 무엇인지도 알아가는 중이다. 잘 들어야 알 수 있다. 내가 놓쳤던 부분에 대해서 짚어줄 때, 짧은 문장으로 정의 내릴 때, 스치듯 하는 한 마디에 뭉클한 감동이 따라올 때도 있다.     

 

책이 중심이 되어서인지 언제나 서로에게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쉽게 흥분하거나 다름에 대해 갈등에 놓이지 않고 받아들임이 편안하다. 마냥 가까운 게 좋다고 여겼던 것과는 다르다.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건 그냥 수다 떠는 것과 얼핏 보면 같아 보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이야기에 큰 줄기가 있고, 각자가 알아서 가지를 만들어 가기에 풍성하고 단단하다.      


<책 봄> 덕분에 오랫동안 미뤘던《그리스인 조르바》도 읽었다. 지난 늦여름, 만나는 날이 다가오자 며칠을 입시공부하듯 자리에서 꼼짝 않고 책에 매달렸다. 이때 독서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다가왔다. 책 봄의 두 번째 봄을 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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