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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19. 2024

친구가 집에 오던 날

내 공간에 대한 갈등

공원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의 문자다. 얼굴을 보고 싶다고 했다. 가끔 만나지만 보통은 며칠 전에 미리 약속을 잡고 만나는 게 그간의 스타일이었다. 전날까지 아무 말이 없다가 갑자기 연락한 건 그만큼 누구와 말하고 싶다는 간절함처럼 들렸다. 타인의 행동을 바라볼 때 내 경험의 범위를 벗어나기 힘들다. 친구의 마음이 내 가슴속처럼 와닿았다. 망설일 필요도 없이 얼른 만나자고 답했다.     


그다음은 만날 장소가 문제다. 언제부턴가 어디를 가야지 하는 바람 같은 게 많이 줄었다. 익숙한 곳이 좋고 편한 곳을 찾는다. 우린 그동안 주로 우리 집에서 만났다. 친구 집 가까운 곳에서 볼까 하다가 마땅히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도 어려워 자연스럽게 우리 집이 아지트가 되었다.    

 

운동을 다녀오자마자 부리나케 청소기를 돌리고 대충 치웠다. 집 상태가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없다. 한두 해 봐 온 것도 아니니 최소한으로 정리하고는 마무리했다. 프렌치토스트와 간단히 집에 있는 것들로  샐러드를 만들기로 했다. 특별히 분주히 준비할 게 없으니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친구와 이런저런 밀린 얘기를 했다.  

   

친구는 네 시간 정도 우리 집에 머물렀다. 언제나 그렇듯이 마지막 만난 날 이후에 일어난, 겨울 동안 밀린 얘기들이 쏟아졌다.  언제나 제자리인 듯한 얘기지만 말하고 나면 조금은 가볍다.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그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까지 보고 집에 왔다. 그러면서 3월 초에 있던 모임이 떠올랐다. 네 명이 매달 얼굴을 보는데 큰맘 먹고 티파티 공간을 예약하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편안함을 주도록 천정은 한참이나 올려다봐야 할 만큼 높았고, 이국적인 샹들리에와 함께였다. 세 종류의 홍차와 빵, 샌드위치, 샐러드와 오렌지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다. 꽃과 차와 맛있는 먹거리와 한참이나 함께했다.     

봄날 티파티

내가 그리는 모임의 모습 중 일부는 이와 매우 비슷하다. 이처럼 화려하지는 않을지라도 정성으로 만든 음식은 충분히 내놓을 수 있는데 자꾸 용기가 안 난다. 그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평가라는 타인의 시선이다. 


여기에 한 몫하는 게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 중 하나인 집 정리다.  매일 집과 회사만 오가던 시절이 사라지고  처음으로 이웃에 놀러 갈 일이 있었다. 신발을 벗고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정리의 달인이구나 싶을 만큼이었다. 

“집이 치우지도 않아서 어지럽죠.”

내가 찾았던 이들은 다들 첫인사로 이 말을 건네지만 내게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그 후로 정말 부지런히 집을 정돈하기 위해서 애썼지만 싶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방법을 따라가 보기도 했다. 결국은 다른 생활 때문인지 며칠 이어지기 어려웠다. 마음처럼 안 되는 정리 습관에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집으로 초대한다는 건 그만큼 가까운 이들인데 그들의 이목을 그리 신경 쓰는 걸까? 그들은 한두 해 만난 것도 아니고 그 시간만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기에 내가 어떻게 사는지 모르지 않는다. 며칠에 걸쳐 이 불편한 부분이 자꾸 떠올랐다. 내 삶에 대해서 당당함이 모자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누가 누구의 삶의 모습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살펴보면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면 그 속에서 살아나가면 될 일인데 말이다.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이 만족하면 그 이상 바랄 게 없다 여기면서도 다른 이를 집으로 부르고 싶을 땐 망설여진다. 아무리 예쁜 카페도 좋지만, 집에서 나누고 싶은 게 많은데 이런 감정들이 나타나면 멈춰버린다. 나와 닮은 내 공간, 내 집을 열어 친구를 맞이하는 일이 지금보다는 편안할 때쯤 나를 둘러싼 불안도 작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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