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Feb 08. 2024

선물 읽기

오랜 친구 만난 날 

선물이 우리 곁에 머무는 즈음이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설을 앞둔 며칠은 마음이 분주하다. 설령 누군가에게 줄 것을 마련하지 않더라도 가슴에선 무엇이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갈등이 오간다.     


선물을 받았다. 집안일 때문에 잠깐 친정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일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비행기 표를 예약한 시간은 한참이 남았다. 대학 선배에게 전화했다. 다행히 시간이 된다 해서 아침부터 만났다.   

  

가끔 그러고 싶던 일상을 보냈다. 어느 귤밭 사이에 있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맛있게 먹고, 파도치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것이 이 겨울 끝자락에서 받은 큰 선물이었다.


“우리 그릇 보러 갈까? 시간 좀 여유 있지.”

그가 얘기하다 말고 갑작스럽게 생각이 났는지 말을 건넸다.  조용한 주택가 한편에 자리 잡은 아담한 편집숍이었다. 주방에 필요한 그릇부터 여러 도구, 탁자와 의자 등이 눈에 띄었다. 공항에 가야 하는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내가 주변을 살펴보는 사이 가방 가득 파스타볼 두 개와 서너 개의 주방 도구가 포장되었다. 문을 열고 가게를 나서며 그가 묵직한 가방을 건넨다. 그는 집에서 편하게 쓸만한 도구라며, 지금 쓰고 있는데 참 편하다고 했다.      

선물 받은 그릇과 조리 도구

손이 무거워지면서 뭉클한 기분이 올라왔다. 그를 안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조용하지만 자기 생각이 분명했고, 여러 도전을 하며 세 아이의 엄마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다. 몇 년 전부터는 방과 후 교사로 초등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내게 건넨 그릇은 그가 몇 개의 학교를 돌며 열심히 일한 어느 부분일 것이다.   

   

그와 나는 비슷한 게 많다. 때로는 즉흥적이고 솔직하다. 그를 만나면 다른 이에게 꺼내놓지 못하는 것들도 별 망설임 없이 나눈다. 서로 사는 지역이 다르기에 일 년 한두 번, 때로는 한 번을 만나지 못하고 해를 보낼 때도 있다.     


그럼에도 만날 때마다 낯설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다. 그가 건넨 쇼핑백에 담긴 물건들은 그런 그의 성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하루를 보내고 포장된 것을 뜯어서 식탁에 올려놓았다. 기쁨이 잠시 내게 왔다. 그가 내게 전한 건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사이에서 전해오는 이해와 응원이었다.     


그는 내가 요리를 좋아하기에 그릇에도 관심이 많다는 걸 잘 안다. 주부에게 그릇은 나를 보여주는 일부분 일 수 있겠다 싶다. 매일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담아내는 게 그릇이다. 관심이 없는 이 역시 그만의 편리함 혹은 실용성을 따질 것이고, 그보다 더 신경을 쓰는 이라면 디자인과 색, 잡았을 때의 느낌, 비용까지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 

    

때로는 옷보다 마음이 가는 게 그릇이다. 선물은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말에 언제나 공감한다. 무엇이든 선물할 수는 있지만 받는 이를 잘 모를 때에는 이상하게 공허한 느낌이다. 때로는 뭔가를 전하는 일이 의무감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아는 이에게 그 사람을 그리며 선물을 준비할 때, 때로는 누군가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내게 무언가를 전할 때 타인과 연결된 인연의 고리를 확인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를 향한 이해와 배려가 깊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가 선물한 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스타를 담거나 레몬즙을 짤 때 그의 얼굴이 더 가까이 떠오를 것 같다. 연휴가 끝나면 무엇이든 그 그릇을 위한 요리를 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