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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15. 2023

감 샐러드, 뜻밖의 만남

특별한 점심 

오랜만에 무얼 먹을까 고민했다. 집밥을 준비할 때면 매일 하는 일이지만 나를 향해서는 가끔이다. 먹고사는 일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글감을 찾는 과정이 어떤 먹거리를 정해줄 때도 있다. 

    

어제 하루 대충 시간을 보냈더니 집안일이 가득한 날이다. 아침 운동을 다녀와서 20여 분을 멍하니 있다가 밀린 설거지와 빨래 널기를 했다. 그러다 점심 메뉴를 고민했다. 귤 상자 안에 든 감이 보인다.     


감 샐러드로 정했다. 밥시간이 다가왔지만, 허기는 아직이다.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이래서 다이어트를 시작하지만 별 효과 없이 끝난다.  

   

탄수화물이 없는 밥상으로 정했다. 감 하나도 많을 것 같아서 절반으로 했다.  예쁘게 먹어야겠다는 마음에 빨강 파프리카 하나를 꺼내어 절반을 자르고  채를 썰었다. 그라탱을 주로 담는 노란 그릇에 감과 파프리카를 넣고 올리브유와 감식초를 뿌렸다. 포크를 꺼내어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초간단 점심에는 그럼에도 여러 이야기가 담겼다. 음식에 관해 기록하다 보면 절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때론 그것을 보면서 생활을 정리하고 나를 돌아본다. 둘 다 비슷한 듯하지만 후자는 의도적이다.     


감을 통해서 이것을 준 이들을 떠올렸다. 내 삶의 바탕을 이루는 부모님이다. 엄마는 택배로 감을 보내주었지만, 감나무를 심은 건 아버지였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으니 30여 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 내 키보다도 작았던 묘목은 손이 닿지 않을 만큼 큰 나무가 되었다. 가을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튼실한 단감을 선물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자식과 손주들에게 감 따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던 아버지 역시 십여 년 전에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감 샐러드

감을 볼 때면 문득문득 아버지가 떠오른다. 이별보다 더 슬픈 게 잊히는 거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진 확실한 기억의 도장을 찍고 가셨다. 그리고 그걸 가꾸는 엄마는 또 나름의 역할을 한다.     


어느 해인가 감이 주렁주렁 열려 좋아하고 있었는데 참새들이 날아와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갔다. 엄마는 아침에 과수원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니 집 안마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감들이 나무 밑에 꽤 많이 떨어진 걸 발견했다. 엄마는 그냥 버리기가 너무 아까워서 괜찮은 거로만 골라서 식초에 담가두었다.     


친정에 갔는데 엄마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한 숟가락 먹었더니 달콤한 맛이 진했다. 해가 바뀌고 한참이 지난 후 숙성되어 모습을 드러낸 감식초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병에 담아 가방에 넣었다. 

“감식초야. 피곤하거나 그럴 때면 물에 타서 마시면 좋고 소스로 이용해도 괜찮아.”  

   

냉장고에 두었는데 잊고 있었다. 샐러드를 준비하다 생각나서 꺼냈다. 아빠의 감과 엄마의 식초가 만났다. 어떤 물건이나 공간을 보면 그 사람의 성정이 그려질 때가 있다. 감을 두고서도 그런 기분이다.  무언가를 준비해서 부지런히 살아가는 성실함을 강조하셨던 아버지와 집에 있는 것을 무엇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어머니, 두 분의 삶에 모습이 담겼다.      


생각보다 행동하며 지내려는 요즘이지만 어제부터 머릿속이 복잡했다. 대부분은 지금보다 내일과 이어져 있는 것들이었다.  감샐러드를 먹으며 여유를 찾으려고 했다. 감과 파프리카가 지닌 맛을 경험하는 데만 집중했다. 그러는 사이 드문드문 아버지와 엄마가 떠올랐다. 만남은 때로는 예상에도 없는 형태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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