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시선
'찍 찍'. 어제저녁부터 이름 모를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다음날까지 이어진다. 낮에는 괜찮더니 오후 4시가 가까워질 무렵 다시 시작이다.
지난해도 이맘때부터 베란다 화분 주위에서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너무 신경 쓰였는데 무엇인지 찾지 못하니 포기하고 두었다. 날이 추워지니 절로 사라졌다. 이번에도 그러려고 했는데 자꾸 그곳으로 눈과 귀가 향한다.
거실 에어컨 주변이 문제의 주인공이 사는 듯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귀뚜라미인 듯하다. 방충망을 꼭꼭 닫아두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소리가 날 때마다 주변을 딱딱 두드리고 조용히 하라고 했다. 혼자 쉬고 있는데 고요를 깨뜨리니 얄밉다. 처음에는 무심히 지나려고 했다. 한번 마음을 쓰기 시작하니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이 크다.
주변을 살피면서 귀뚜라미를 찾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몇 분째 혼자 씨름하고 있는데 하얀 커튼 사이로 희미한 회갈색 무엇이 보인다.
살금살금 다가가니 그 녀석이다. 휴지를 들어서 힘주어 잡았다. 그리고는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문제를 해결했는지 확인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20여 분을 보내도 아무런 소리가 없다.
내가 본 그것이 소리의 진원지였나 보다. 잠깐 집요함이 문제를 해결한 것 같아 기뻤다. 그건 단지 내 생각이었다는 걸 확인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편은 일요일임에도 일이 많다고 회사에 나갔다 돌아왔다. 별생각 없이 낮에 있던 일을 영웅담 늘어놓듯 설명했다.
그 역시 어제저녁부터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귀뚜라미는 가을 상징이잖아. 해충도 아니고. 그냥 조심스럽게 잡아서 문밖으로 날려 보내지.”
순간 멍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다가오는 감정은 놀라움과 충격이었다.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라고 여겼던 나와 달리 남편은 가을을 떠올렸다. 이리도 감상적인 사람이었던가? 내가 아는 그가 맞는가? 한참이나 그를 쳐다봤다.
작은 곤충인데 잡아서 날려주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집안에 들어온 나방 같은 것을 잡아보지 않은 그였다. 모르는 사람이 하는 이상적인 얘기라고 삐딱하게 바라봤다.
“당신 이렇게 낭만주의자인지 몰랐네.”
한마디 날리고는 더는 꺼내놓지 않았다. 한편으론 귀뚜라미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남편이 부러웠다.
그가 바쁘게 지내는 듯하지만 나름 여유 있는 생활을 한다는 느낌이었다. 반대로 난 낭만적이고 감성적이라고 하는데 큰 소리도 아닌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이 씁쓸했다.
잔잔한 일상에 다른 것이 끼어들면 마치 큰일 나는 듯 빡빡하게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고 물음을 던졌다. 그 후에 찾아온 건 집안일에 무관심한 남편에게 보내는 불평이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니 할 수 있는 말 같다.
남편 얘기는 곤충채집 하는 어느 소년의 이야기로 들린다. 같이 살면서도 집안일에는 거리를 두는 방관자적인 모습으로 비쳤다. 과하다 싶으면서도 이 생각이 저녁 내내 이어졌다.
다시 며칠을 보내고 그때를 돌아본다.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다르게 보는 시선을 떠올렸다. 남편과 난 분명 다른 사람이다. 평소에도 그런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왜 나와 같지 않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을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편안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는 생활을 하는 건 아닌가 싶다. 일상의 여유를 찾으라는 사건 아닌 사건인 듯하다. 어떤 일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다르게 보인다. 알고 있지만 늦게서야 다가온다.
월요일, 날이 너무 더워 에어컨을 켰다. 귀뚜라미는 가을의 상징이라는 데 맞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