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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01. 2024

마음 흐린 날 동네 카페에 간다

공간을 바꿔보기

동네에 새로운 카페가 문을 열었다. 5월에 문을 연다고 했는데 며칠을 앞당긴 모양이다. 건물 앞에 현수막을 내 걸고 베이커리 카페임을 알렸을 때부터 기대 가득이었다. 주말을 지나면서 비 맞은 공원은 깊은 숲으로 가는 중이다. 덥수룩해진 수염처럼 이리저리 뻗어 나가는 풀들도 예쁘다. 초록들에 둘러싸여 한참을 걷다 보니 카페에 불이 켜졌고, 차를 마시는 이도 눈에 들어왔다.  


아침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고등학생인 아이에게 물병을 전해주기 위해 방문을 열었는데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1차 고사 둘째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준비보다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는 같아 못마땅했다. 아이는 친구가 카톡으로 무엇을 물어와서 그랬다고 했지만 속이 답답했다. 아이의 일을 내 것으로 여기는 상황으로 변했다. 종종 이럴 때마다 평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일 때문인지 공원을 도는 내내 친구와 걸음을 멈추고 아무 얘기나 떠들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친구가 카페에 가자고 했다. 9시를 조금 넘길 무렵이었는데 벌써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이 있다. 

   

카페로 변신한 이곳은 이전까지 갈비찜과 해물탕, 다슬기 집을 거쳐 갤러리로 운영되었다. 마지막으로 갤러리였다는 건 문을 닫기 얼마 전에야 알았을 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여기 딱 카페가 어울리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친구가 건넨 한마디에 적극 공감한다. 카페는 완전한 2층은 아니지만, 계단을 올라야 하는 까닭에 의자에 앉으면 밖이 시원하게 보인다. 가로수인 주변 나무들이 통창 너머로 풍경화를 연출했다. 


그곳에 앉는 순간 다른 기분이다.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이 있다. 집이 편안하다 하면서도 벗어나고픈 곳이다. 친구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침에 있던 일을 말하지 않았다. 굳이 그것을 꺼내놓지 않아도 그의 말을 들으며 살며시 마음이 진정되어 갔다.      


같은 공간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다른 마음을 갖기 어렵다. 물론 스스로 정화작용을 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 근육이 있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힘든 일이다. 이른 시간부터 이곳을 찾는 이들 역시 나와 같은 답답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타인을 바라볼 때 내 기준으로만 보는 습관이 어느새 작동했다. 

     

멀리 차를 타고 가는 카페도 좋지만 그래도 편한 건 5 분 거리에 있는 동네 카페다. 대형프랜차이즈보단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카페에 맘에 간다.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일상이 별로인 것처럼 다가올 때면 집안에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이 풍성처럼 부푼다. 작은 의자와 꽃병, 그릇에 이르기까지 괜찮아 보이는 새것을 들여놓으면 확 바뀔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이케아 온라인몰에서 생활에 쓰이는 여러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곧 카드를 들어 결제할 것처럼 하다가도 거기서 멈춘다. 현실은 집안에 그런 물건을 들여놓아도 바라는 만큼의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것. 정말 사고 싶은 것이라면 비용을 기꺼이 지급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 가슴속 이야기를 잘 살피는 게 훨씬 빠른 방법임을 잘 아는 까닭이다.    

 

그때 동네 카페는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게 하고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중간다리가 되어준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있거나 식물들이 초록빛으로 반겨주는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집에서는 바라지만 할 수 없는 공간 변화를 카페에서 경험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곳은 내 거실이며 서재다. 카페를 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어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부터 기분은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잠깐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이팝나무 꽃도 보고, 벌써 바랜 철쭉도 만났다. 꽃비를 내리던 벚꽃은 이제 열매가 맺혀 익어가는 중이다. 나뭇잎도 무성해졌다. 보도블록 바닥은 노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어제 내린 비에 흩날리던 송홧가루가 한데 모였나 보다. 세상의 작은 움직임을 하나씩 눈에 담으며 편안한 숨을 쉬어본다.     


카페에 도착하기까지 그렇게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가오는 커피 향과 아침에 구웠는지 달콤함으로 유혹하는 케이크와 빵, 쿠키까지 그곳에서 신경 써야 할 것이 새로이 생겼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나를 위한 선택의 순간이다.

초록 간판이 예쁜 동네 카페는 환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어서 좋았다. 오랜만에 새로운 공간을 만나서인지 살짝 들뜬 마음이다. 친구도 그러했는지 주말 지낸 이야기부터 늘어놓았다. 공간에 따라서 기분도 달리 흐른다. 그의 말을 들으며 복잡했던 아침 일을 마음속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 두었다.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우유 크림빵을 먹는 동안 내 상태를 친구에게 전하지 않아도 갈등이 작아졌다. 집에서 마셔도 되는 커피를 옷을 바꿔 입고 집 밖으로 나가는 이유다. 설거지해야 할 그릇, 정리해야 할 옷과 책들, 일상과 아주 가까운 것들과 떨어져 있는 동안 감정이 제자리를 잡았다.      


공원 옆 새로 얼굴을 내민 카페가 흐렸던 아침을 맑음으로 바꿔주었다.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는 일은 단순하지만 작은 행복에 가까워지는 방법 같다. 얼마 동안 마음이 쿵쾅거릴 땐 그곳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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