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의미
이름은 곧 의미다. 어떤 대상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이름을 꺼낸다. 이게 비단 사람 사이에만 통하는 건 아닌 듯하다. 아이와 아침에 텔레비전을 보다 한 장면에 순간 멈칫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한 부분이었다. 하울이 큼지막한 베이컨을 활활 타오르는 불 위에 올려진 팬에 넣고 달걀 몇 개를 깨트려 프라이를 만들었다. 불에서 달걀과 베이컨이 지글거리는 장면에서 침을 꼴깍하고 삼켰다.
“하울 정식이다!”
갑자기 아이가 말했다. 주인공 하울이 만든 음식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었다. 아이의 반응에 갑자기 정말 괜찮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화면은 자세히 볼 새도 없이 후다닥 지났지만 화려한 색들 속에 살아난 한 접시의 음식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그림으로도 이처럼 멋있는데 실제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무엇을 한다고 할 수도 없는 아주 간단한 요리였다. 베이컨을 굽고 달걀 두 개를 프라이했다. 그것만으로는 너무 아쉬워 집에 있는 채소와 과일로 간단한 샐러드를 더했다.
‘하울정식’이 완성되었다. 불과 두 시간 남짓 지난 후였다. 기대했던 애니메이션의 감각적인 느낌은 살아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흘러가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그때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만들었다는 데 만족했다.
어찌 보면 하울과 어떤 관계도 갖고 있지 않은 음식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조합으로 하울정식이라는 이름을 모르고 있다면 그냥 지나치는 게 당연하다. 별거 없지만, 이름만으로 이상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 그것은 음식을 만들고 먹기 직전까지 설렘과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아이에게 빵을 같이 먹어야 하는지 물었더니 괜찮다고 했다. 종종 만화 채널을 통해서 지브리의 영화를 만난다. 그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때도, 때로는 익숙해서 채널을 돌려버리기도 한다.
이날처럼 음식이 훅 들어오는 건 처음이다. 화면 속의 장면을 생활에서 표현하기를 시도하지 않는다. 더불어 그렇게 할 수 있는 영역을 찾기도 간단치 않다. 그런데 이날의 하울정식은 간단할 뿐만 아니라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 가능해서 만들 수 있었다.
아이의 생각이 기발해 물었다.
“아까 그 음식이름 있잖아. 정말 좋던데 어떻게 생각했어?
“엄마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 엄마 그거 많이 알려졌는데 몰랐구나.”
돌아온 답에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떠올린 게 아니라 이름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거였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는 검색해 봤다. 어느 브런치 가게는 같은 이름의 메뉴까지 내놓을 정도였다. 아이의 생각이 기발하다 여겼다. 종종 우리 아이가 특별하단 생각에 아이의 대한 바람이 커질 때가 있다. 이번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바른 정신으로 생각하기에 애써야겠다고 여기며 웃으며 흘려보냈다.
간단한 음식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다르게 다가왔다. 맛있으면 더할 나위 없는 것인데 음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 것 같다. 종종 과잉 의미부여는 일상을 무겁게 해서 때로는 힘들다. 내 앞에 보이고 느껴지는 대로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