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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10. 2024

육개장

먹고 싶은 건 이유가 있다

육개장이 먹고 싶어졌다. 불과 일주일 전에 식당에서도 같은 걸 먹었다. 그런데 또다시 그것이 어른 거른다. 날은 오랜만에 볕도 나고 따뜻한 것 같은데 몸은 살짝 한기가 돈다. 따뜻한 국물이 있으면 기운이 날 것 같다.   

  

육개장을 만들 때 복잡하다 여기면 어려운 음식이 되어 거리가 생긴다. 그때 가능한 것으로만 하는 것. 어디서 봤던 그것이 아니라 내가 육개장이라 말하고, 마음에 들면 그만인 그것이 내 요리다. 굳이 어떠해야 한다고 규정지을 필요가 없으니 편하다.     


양지를 푹 끓이는 과정 없이 국거리용 소고기로 간단히 했다. 적당히 구색을 갖출 채소만 있으면 되었다. 엄마가 준 말린 토란대를 불린 다음 끓는 물에 데쳤다. 냉동실에는 나물을 만들다 양이 많아 남겨둔 고사리가 있다. 그걸 꺼내서 해동시키는 중이다. 그리고 대파와 표고버섯으로 재료준비는 끝났다. 


우선 소고기에 집 간장을 넣고 적당히 볶다가 별다른 육수가 없어서 맹물을 넣었다. 물이 끓어갈 동안 준비한 채소에 마늘, 조선간장, 고춧가루를 넣고 충분히 버무려두었다. 아무리 대충 하는 것일지라도 가능한 범위에서 맛들이는 조금의 정성이다.   

 

고기와 물이 보글보글 잠시 끓으면 채소를 넣고 중간 불에서 충분히 익혔다. 국물에 깊은 맛이 없다. 소금을 조금 넣고는 다시 참치 액을 더했다. 조미료만큼 요리 맛을 끌어올리면서 마무리하기에 좋은 게 없다. 내 손맛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는 소스의 도움을 받는다.    

 

아이와 둘 뿐인 저녁 밥상에서 우선 육개장 건더기를 떴다. 부드러운 토란대와 고사리가 익숙한 맛이지만 반갑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을 경험했지만, 고사리 특유의 향은 낯설지만 정겹다. 우리 집 한라봉 하우스 옆에 있는 토란에서 나왔을 기다란 대는 멀리까지 와서 내 밥상에 올랐다. 고향 땅 너른 풀밭과 가시덤불에서 돋아난 고사리까지 더해졌으니 육개장 한 그릇에 이야기가 가득이다.


아이도 오랜만에 밥 두 공기를 비웠다. 채소를 좋아하지 않지만, 육개장에 들어간 것은 골라놓지 않고 잘 챙겨 먹었다. 내 마음과 비슷한 느낌일까?  내가 원하는 대로 풀어낸 육개장은 예상에도 없던 고향맛을 전했다. 국물은 어느 가을의 바래진 낙엽같이 우중충했지만, 기분은 초록처럼 반짝였다.     

육개장

저녁밥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 같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진수성찬을 내놓기도 하고 때로는 집에 있는 사발면으로 대신할 때도 있다. 식탁 가득 음식이 놓일 때는 열심히 밥을 준비했다는 보람이 있다. 그와 정반대일 때는 내일은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다 어떤 날은 아무런 마음이 없다. 이런 경우 편안하거나 무엇을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지쳐있는 상황이다. 


평소와 다른 음식이 떠오를 때는 자신에게 귀 기울여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건 자신이 원하는 것이기에 솔직히 그 소리를 따라가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가족에 대해서도 오갔다. 가족은 가장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어려운 대상이라는 것. 어버이날에 오랜만에 엄마와 전화통화를 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한때였는데, 끊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음 한 구석이 아파왔다.  

   

엄마의 나이 듦이 전해오면서 어렴풋이 알 것 같은 편한 날 없는 엄마의 삶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이런 감정이 하루를 보낸 다음 날에도 조금 남았다. 엄마는 내가 집에 갈 때마다 육개장 얘기를 하면 바로 그날 밥상에 올렸다. 그런 날들이 쌓여서 별안간 그것이 그리웠나 보다. 


어제와 다른 음식이 생각나는 건 내가 살아온 어디쯤의 기억이 일상에서 살아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먹고 싶은 걸 망설임 없이 만들어 있는 내게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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