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으로 충분한 아침
아침에 수프를 준비했다. 얼마 전부터 생각났는데 잠시 미뤄두었다. 혼자 점심에 이걸 요리하는 게 어색했다. 이상하게도 국물이 중심이 되는 음식은 조금만 하려 해도 결국은 양이 많아진다. 더구나 식은 수프는 싫었다.
이런 이유로 수프는 가족이 다 모인 날 먹는 음식이라는 고집 같은 게 생겼다. 3일 연휴 둘째 날이 그런 날이었다. 수프는 양파와 감자 반쪽이 주인공이었다. 이것을 채 썰고 우선 양파부터 버터에 볶았다. 갈색이 되도록 하는 동안 전자레인지에 얇게 썬 감자와 물을 조금 넣고 3분을 돌렸다.
그래도 감자가 서걱거려 물을 조금 넣고 중간 불에서 서서히 익혔다. 수프 국물은 우유로 대신할 것이기에 물을 최소한으로 했다. 요리할 때마다 느끼지만 감자는 충분히 시간을 두어야 한다. 급히 하려고 하면 할수록 안 익는 기분이다.
그렇게 5분 정도를 두니 감자가 숟가락이 푹 들어갈 만큼 익었다. 이제 우유를 붓고 끓기 시작할 무렵 핸드 블렌더를 돌렸다. 어느새 건더기 없는 묵직한 수프가 되었다.
천일염을 적당히 더하고 한소끔 끓이니 완성이다. 수프가 완성되기까지는 단순한데 만들어 먹는 건 아주 가끔이다. 이상하게 추운 겨울에만 어울릴 것 같다. 맑은 날보다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거나 찬 기운이 돌 때만 이것을 떠올린다.
절기로는 입하, 여름이 오고 있다는데 비가 세차게 내린다. 기온도 쑥 내려갔다. 집에선 모자가 달린 긴팔 트레이닝복까지 입었다. 몸 이곳저곳이 무겁다.
다들 휴일이라 늦잠을 자는 중이다. 밥 하기가 정말 싫었지만 내가 먹고 싶어서 수프를 만들었다. 아이가 나와 프렌치토스트를 굽기 시작했다. 어제저녁부터 아침에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걸 만들어주겠노라고 장담했다. 오랜만에 고마운 토스트다.
전날 아이들과 카페를 다녀왔다. 디저트로 빵 종류를 먹어서인지 토스트가 그리 당기지 않는다. 아이가 옆에서 프렌치토스트의 진수를 맛보라는 한마디에 반 조각을 수프와 먹었다.
쉬는 날이라 별로 움직이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먹으니 허기짐이 찾아오지 않는다. 음식은 배고플 때 먹어야 제맛인데 말이다. 수프는 입안에서 부담 없이 넘어간다. 숟가락을 들어 후루룩 몇 번을 뜨니 기분이 맑아지는 듯 개운하다.
수프를 먹는 아침은 평화롭다. 수프는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라 가끔 식탁에 올리지만, 수프를 먹을 때면 묘한 감정이 찾아온다. 간단하지만 천천히 숟가락을 움직이게 되고 그러는 사이 속이 든든해지는 동시에 여유가 생긴다.
매일 냉장고를 열면서 먹을 게 없다고 하지만 수프 앞에선 그런 불평을 늘어놓을 이유가 없다. 양파와 감자, 온전한 것이 아니어도 이렇게 훌륭한 음식이 탄생했다. 매일 없다고 하지만 잘 찾아보면 많은 걸 가지고 있는데 그걸 모른다는 생각이다.
연한 갈색의 이 한 그릇은 며칠 전부터 시큰거리는 손목과 몸살기운에 예민해진 나를 품어주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한편으론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것들에 매달려 고민하는 내게 주변을 돌아보게 했다. 어찌 보면 잘 살아가는 일은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마음이 찾아올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지금이 그때다. 감자와 양파 반 개를 구하는 일이 그리 어렵진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