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책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내려간다. 지금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서재의 가을맞이다. 여름내 이리저리 뒹굴던 책의 머물 곳을 마련해야 할 때다. 멋진 책장이나 맘껏 숨 쉴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단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정리하기로 했다.
물기를 머금은 걸레를 들었다. 책장에 쌓인 먼지들을 닦아내었다. 이들과 살았다니 기분이 별로다. 며칠만 관심을 두지 않으면 금세 자리 잡는 녀석들이다. 일주일 전에 대충 눈에 보이는 것만 훑었다. 뽀얗게 마치 제집이라도 된 듯 앉았다. 오른손에 힘을 주고 먼지를 밀어내었다. 이제야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 주인과 올해로 14년째 살고 있다. 어디를 가든지 책만 보면 눈빛이 반짝이던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느껴지는 지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한 장만 읽어도 눈꺼풀이 무거워질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니 신기했다. 지금도 출장으로 먼 길을 다녀올 때면 책을 들고 온다. 한두 해 살다 보니 책에 지쳐간다는 게 솔직한 속내다. 둘 곳이 마땅치 않으니 반갑지 않았다. 책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여유로운 공간 활용이 부러웠다.
“여보 책 꼭 가져와야 해. 집이 넓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그리고 당신은 읽지도 않잖아. 정리도 안 하고.”
평소 말이 없는 남편은 잔소리에도 역시나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내 속만 펄펄 끓어 넘칠 지경이다. 어느덧 ‘책’은 짐이 되어 갔다.
거실 앞뒤로 있는 책장 앞에서 오늘만큼 오래 머문 적이 없었다. 문득 책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기분이다. 제목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남편이 좋아하는 분야와 알고 싶은 것들, 명작에 대한 소유욕까지 그의 변함없는 책 사랑을 돌아봤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를 바라본다. 비난이나 평가를 앞세우던 부정적인 감정이 온데간데없다. 사실만으로 이해하니 불편하지 않다. 그동안 책을 놓고 갈등이 많았다. 계절이 바뀔 즈음 대청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시기에 꼭 한 번은 터지던 문제였다.
글을 알기 시작할 무렵부터 국사 대사전에 푹 빠져 지내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밖에서 특별히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작은 글씨였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누가 읽어보라 하지도 않았지만 이름 모를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는 로봇 태권브이보다도 호기심을 자극했고 즐거움을 주었다. 혼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방 안에 틀어박혀 수십 번을 읽고 읽었다. 나라의 흥망성쇠와 시대를 주름잡던 인물들이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몸에 익었다. 그는 지금 학예사로 일한다. 책은 그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 되어주었다.
책의 키를 맞추는 게 정리의 기본이다. 귀퉁이에 어울리지 못하고 우뚝 솟아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마음이 안 가는 책이다. 문화재 실측 조사 보고서부터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서 발행한 도록이다. 몇 년 전 일이 생각났다. 도록은 내게 피하고 싶은 존재였다. 무게만 해도 일반 책의 몇 배이고 크기도 커서 애물단지로 여겼다. 쌓여가는 그것들을 보며 해법을 찾아야만 했다. 내 기준으로 몇 권을 골라 버렸다. 그러고 나면 오래 묵힌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시원했다. 그러다 탈이 나고 말았다.
“묘지석에 대한 도록 못 봤어? 그거 귀한 건데 내가 여기 어디쯤 놓은 거 같은데.”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하기 무섭게 책을 찾는다. 어느 박물관에서 일할 때 어렵게 얻은 거라며 지금 꼭 필요한 것인데 보이지 않는다고 난리다. 저녁도 대충 먹고 다시 찾기에 돌입했다. 그즈음에 몇 권을 버린 것 같은데 가물가물했다. 순간 마음이 불편해졌다.
“얼마 전까지 여긴 있는 거 확인했었는데. 책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말을 잊었다.
“그 책 버린 거 아냐? 그걸 버리면 어떡해? 난 책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인데….”
가슴을 찌르는 한마디였다.
“미안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책을 그냥 두기로 했다. 내 기준으로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험한 후였다. 그럼에도 쌓여가는 책들을 보면서는 여전히 불편하다. 어쩌다가 띄엄띄엄 과월호 잡지 몇 권을 재활용으로 버릴 뿐이다. 퇴근하는 남편 손에 두 권의 책이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지나치기 어려웠다. 담담히 말을 꺼냈다.
“당신이 책 좋아하는 거 존중해 주고 싶어요. 그렇지만 공간이 한정돼 있으니 정말 집에 가져와서 두고 싶은 것만 가져오면 어때요?”
솔직한 마음이었다.
“알았어.”
남편 역시 담백했다. 짧은 한마디에 진지함이 느껴졌다. 앞으로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희망이 생긴 듯하다.
한 시간이 넘어간다. 작업의 목표는 제목이 잘 보이도록 하는 일이다. 정리는 내 일생 최대의 과제일 만큼 어렵다. 그런대로 책을 꺼내 읽고 싶은 정도가 됐으니 만족하기로 했다. 책등이 가지런하니 책들이 예쁘기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도서관이다. 누렇게 변한 책 표지가 세월을 말해준다. 어떤 책은 누가 읽어 주기만을 기다리듯 새 책 그대로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역사책과 잊힌 사건들을 파헤친 기록물, 의궤 반환을 기념하는 전시회장에서 구입한 도서도 있다.
가장 가까이 있기에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남편이 새롭게 다가온다. 책장은 물론 보이지 않는 집안 곳곳에 숨어 잠자고 있는 책은 그의 친구였다. 잘 알기에 더 알고 싶고 모르는 세계에 대해 탐구하고 싶은 그의 마음이 담긴 보물상자다. 일본의 한 작가는 정리는 집으로 가고 싶은 욕망을 깨우는 가장 기본 작업이라고 했다. 이 말에 100퍼센트 동의한다. 외면하고 싶은 책이 내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책은 가구가 아니지만 집을 그만큼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한 미국의 성직자 헨리 워드 비처의 말이 생각난다. 그의 책이 숨 쉬고 함께 살아가는 적당한 거리를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