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쌀로 떡해 먹기
열심히 먹을 생각이었다. 지난해 햅쌀이 나기 시작한 10월 끝자락에 현미 20킬로그램을 샀다. 옆집 언니 친정에서 농사지은 거라 믿고 장만했다. 건강을 밥을 먹겠다는 의욕에 평소보다 10킬로그램을 더 주문했다.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다 먹고 나서 사도 될 일이었다. 보리, 검정쌀, 귀리, 율무 등 여러 종류의 잡곡을 섞어서 밥을 하는 까닭에 시간이 가도 현미가 줄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벼가 고개를 숙이고 황금물결 바다를 이룬다. 새 쌀이 나올 시간이 되었다. 묵혀 놓은 쌀에선 묵은 향이 났다. 빨리 먹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 지 오래다. 며칠 고민하다 떡을 만들기로 했다.
동네 떡집 할머니에게 갔다.
“현미로 떡 만들 수 있어요? 가래떡 만들려고 하는데요.”
“응 한 이틀 정도 불리고 가져와봐. 근데 찹쌀현미야 일반 현미야?”
“아마 그냥 현미 같아요.”
현미를 물에 불렸다. 하루에 세 번 물을 갈아주면서 담백한 가래떡이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침 일찍 가져오라는 말에 7시에 쌀을 들고 방앗간으로 갔다.
“아이고 이게 뭐야. 너무 작아서 이걸로는 떡 못해. 가루 갈다가 기계에 다붙어버리겠구먼.”
주인어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보자기를 열어젖히며 쌀을 보고 놀란다. 떡을 만드는 양을 가늠하지 못하는 초보 주부의 모습이 귀여운 눈치다. 물에 젖은 쌀을 놔둘 곳도 마땅치 않아서 떡집에 맡겼다. 다시 그만큼의 쌀을 불리고 가져오기로 했다.
“엄마 떡이 언제 나온데?”
“아직 멀었어. 쌀을 더 가져가야 해서 다음 주 월요일이면 될 거야.”
아이들이 떡을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다. 토요일부터 다시 쌀을 불렸다. 일요일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떡집에 갔다.
“오후에 떡이 나올 거야. 그때 연락할게요.”
8시 반쯤이었다. 집안일을 하다 보니 순식간에 오후다. 울리지 않는 휴대폰만 바라본다.
“엄마 아직 떡 안 나왔어?”
학교 갔다 온 아이가 문을 열자마자 떡을 찾는다. 저녁이 다 될 즈음 답답한 마음에 다시 방앗간을 찾았다.
“아니 쌀을 갈아보니 다 현미 찹쌀이야. 그거 가래떡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다시 냉동실에 놔뒀어.”
이게 무슨 일이지 순간 마음이 답답해졌다. 왜 연락을 주지 않고 다시 가루를 냉동했는지 물을 여유도 없었다.
“그거 인절미로 만들어 놨다가 두고두고 먹어. 그게 젤 좋은 방법이야.”
“그럼 지금 인절미로 해주세요. 애들이 기다려서요.”
그것도 어렵단다. 가루를 얼려 놓은 상태라 내일이 돼서야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순간 화가 살짝 올라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마음을 다잡았다. 해는 다 져서 어둠이 찾아왔다. 너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다시 이틀이 지났다. 전화벨이 울린다. 떡이 다 됐다며 찾아가란다. 떡을 만들 생각에 처음 동네 떡집을 방문하고 딱 일주일 만이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아이들이 신났다. 큰아이는 어제부터 냉동실에 두었다 설탕을 쌀짝 뿌려 구워 먹으면 맛있을 거라며 먹는 방법까지 생각해 뒀다. 떡 상자가 묵직하다. 끝나지 않은 숙제를 남겨 놓았다 마무리 지은 것처럼 속이 시원하다. 볶은 콩가루를 사고 왔다. 큰 접시에 콩고물을 바르고 도톰한 인절미 조각을 놓은 다음 가루를 골고루 묻혔다. 적당한 온기가 묻은 인절미가 현미 특유의 향과 쫀득하니 자꾸 당기는 맛이다.
쌀의 종류를 몰라서 벌어진 며칠간의 소동이다. 작은 실수가 시간과 마음을 쓰는 결과를 만들었다. 떡이 나왔으니 어쨌든 일단락되었다. 요즘 들어 단순하게 생각하고 생활하자는 주의다. 그렇지만 정확히 알고 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까지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될 듯하다. 하루에 끝날 일이 일주일이나 걸리는 장기전이 되어버렸다. 주문이 밀려 있는 떡집 상황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탓이었다. 작은 일이 큰일을 치르는 것처럼 시간이 흘렀다. 어느 정신과 의사는 작은 일은 작게 큰일은 크게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일이 작고 어떤 일이 큰 것인지.
지금도 찹쌀 현미와 일반 현미를 구분하지 못하겠다. 눈으로는 알지 못하니 오랜 기억을 위해 메모지를 들어야겠다. 떡을 두고두고 맛있게 먹어야겠다. 그래야 농사지은 농부에게 덜 미안해지는 마음이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만들어진 인절미를 이웃들과 나눴다. 막내 친구인 하은이네 집에도, 오랜만에 만난 글라라 언니에게도 마음을 전했다.
“엄마 하은이 엄마가 감이랑 추어탕 주셨어.”
떡을 갖다 주러 친구네 집에 갔던 막내가 무겁게 들고 왔다. 요즘같이 싸늘해진 날씨에 건강을 챙겨줄 귀한 먹거리다. 인절미로 마음을 나누는 저녁이었다. 냉동실에 언제나 꺼내 먹을 수 있는 떡이 있다는 생각에 부자가 된 것 같다. 찰떡은 함박눈 펑펑 내리는 날 먹어야 제맛인데 그때까지 남아있으려나. 부담스럽던 현미가 떡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작은 기쁨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