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일은 누가 정했을까?

세 엄마의 공통점

by 오진미



수다는 맛나다. 동네 친구와 함께 공원을 한 시간쯤 돌다가 코로나로 만나지 못한 친구를 불러내기로 했다. 12월이면 출산을 앞둔 임산부다. 집에서만 지낸 그간의 안부가 궁금했다. 동네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얼굴은 좀 부은 듯했고 세상에 나올 아이와 함께 하는 몸은 힘들어 보였다.

생강차와 커피를 시켰다. 겨울의 끝자락이던 2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나서 반년만이다. 화제는 곧 세 아이의 엄마인 그의 일과다. 주부의 일이 말하지 않아도 그려지는 것처럼 그 역시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아침밥을 차리고 남편을 출근시키고 초등학생과 유치원 두 아들을 보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단지 변한 게 있다면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과 시간이 흐를수록 배는 불러오고 몸이 힘들어졌다는 것.


카페는 한동안 오가는 사람이 없다. 카페 주인만이 고개를 푹 숙이고 뜨개질에 열심이다. 봄을 보내고 여름을 지나 완연한 가을에 만났기에 그간의 안부를 묻다가 일상 이야기로 자연스레 흘렀다.

“일요일 2~3시가 넘어가면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토요일부터 참았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밀려 나오면서 문을 쾅 닫고 나가고 싶다니까.”

내가 말문을 열었다. 집안일에 쉼 없이 움직이는 나와 방관자로 일관하는 가족들의 태도를 꼬집었다.

“나도 그렇다니까. 딱히 갈 곳도 마땅치 않고 그냥 그냥 보내긴 하는데. 다른 식구들은 다들 자기 할 것을 하잖아. 그러면서 당연히 엄마인 내가 음식을 차리고 설거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지.”

“언니 저도 그래요. 배가 이렇게 불러오는데 여전히 내가 해야 할 일은 똑같더라고요. 집에 있는 사람이니까 해야 한다는 마음 같아요.”

서로가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힘들었던 집안 얘기를 풀어놓았다. 혼자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모두가 경험하는 흔한 일상이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고정되어 버린 역할에 불편함을 애써 외면해가며 가족을 살피는 주부들이었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주말, 주부는 가족이지만 그 여유로움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평일에는 학교와 회사로 뿔뿔이 흩어지기에 단 몇 시간의 자유가 주어진다. 휴일은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 요즘같이 밖으로 나가는 일이 조심스러울 때는 식구들과 초 밀착되어 생활해야 하는 날이다. 삼시 세 끼를 챙기고 그 사이에 적당한 먹을거리를 내놓아야 하는 부담도 배가 된다. 리모컨을 붙잡고 소파에 기대에 움직이지 않는 남편과 유튜브를 보거나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때로는 손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의 하루는 마치 저장된 무엇이 가동되는 끊임없는 생산과 정리의 반복이었다.


우리 셋은 처음부터 전업주부가 아니었다. 가물가물하지만 워킹맘이라는 이름으로 회사와 집을 열심히 오가던 시절도 있었다. 육아를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전업주부’ 이름표를 달았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시간도 자유롭다고 여기며 전업주부의 삶을 부러워했다. 그저 밖에서 바라보는 액자 속의 그림 감상이었다. 현실은 사뭇 달랐다. 주부의 일이 성과로 이어지는 회사처럼 일정하지 않은 관계로 종종 좌절과 우울을 경험한다. 매일의 일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표 나지 않는다. 월급으로 환산해서 가치를 매기는 자료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순간 사라지고 만다. 외롭고 험난한 여정이다. 집에서 정성 들인 건강 밥상과 효율적인 경제생활의 핵심 주체로 존재하기를 은연중에 강요받기도 한다.

“남편이 퇴근해서 오는데 밥상에 반찬이 몇 가지 없으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아. 마치 공부 안 하고 놀다가 들킨 아이처럼 말이야.”

“맞아요 맞아. 애들만 먹을 때는 좋아하는 음식으로 간단히 차려주다가도 남편이 함께할 때는 식탁에 잘 먹지도 않는 찬들을 올리게 된다니까요.”

주거니 받거니 서로 열심히 목에 힘을 준다. 그동안 쌓인 게 많았나 보다. 우리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누가 우리에게 주부의 역할을 규정지어버렸는지 모르겠다.


가까이 엄마를 보면서 멀리는 드라마를 통해서 주부의 일을 부지불식간에 배웠다. 시대도 상황도 많이 변했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이라는 주부의 단어에서 풍겨오듯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에 덧붙여지는 게 늘어날 뿐이다.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언니도 그래요. 우리다 생각이 비슷하네요.”

주부로 평균 십여 년을 산 이들이 고민하는 지점이 한 곳을 가리켰다. 주부는 어떤 일을 하는 존재인가에 대한 끝나지 않는 물음이다. 누구도 그 범위를 정해놓지 않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굴레에서 매일 널뛰며 살고 있다.

두 시간 정도를 카페에 머물렀다. 커피도 바닥을 드러내고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오늘은 또 뭘 해서 저녁을 먹어야 하지.”

언제나 되풀이되지만 대충 하기는 어려운 시간이 다가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된장찌개, 김치찌개, 계란말이 등 식탁에 오르는 단골 메뉴 역시 몇 번의 생각에서 나온 엄마들의 수고로움의 결실이었다. 파도치듯 엄마와 주부, 나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여러 생각이 맴도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되면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는 속 깊은 주부들이었다. 남편의 노고를 알기에 쇼핑을 즐기지도 않는 검소함이 몸에 배었다. 제 집 드나들듯 하는 마트에서도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는 알뜰한 장보기 선수다. 앉았던 의자를 정돈하며 친구가 말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이들이 커갈수록 배우게 되네요. 워킹맘이 아닐지라도 엄마로서 아이의 양육자로서 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지 여러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아이를 낳고 키워 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네요.”

전업주부인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 아이 하교 시간이 다 되어가자 약속이라도 한 듯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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