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입술 바이러스

by 오진미



문득 말을 걸어온다. 처음에는 그냥 무시했다. 자꾸자꾸 말을 건다. 귀찮다 여기다 삼십 중반부터 무슨 말인지 듣고 싶어 졌다. 한번 툭 던지고 사라지는 친구지만 의미를 되새겨 보면 까닭은 분명 있었다. 나와 내 몸에 관한 이야기다. 난 예민하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알아차리기에 빨리 반응한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굳이 꺼내어 살피면서 피곤해질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젠 습관이 되어 버렸다.


몸이 내게 말을 한다. 일주일이 지났다. 입술 주변에 물집이 조그맣게 생겼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루 이틀 지나자 눈에 띄게 심해졌다. 집에 있는 광범위 피부질환 연고를 부지런히 아침저녁으로 발랐다. 자고 나면 괜찮아질까. 오늘보다 내일은 좋아질 거라 여기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3~4일이 지나니 안 되겠다는 조급함이 밀려왔다. 어떡하지 망설이다 동네 피부과로 갔다.

“이거 바이러스예요. 처음 시작할 때 와야는데 시간을 많이 끌었네요.”

“왜 생기는 걸까요? 선생님”

“음 원인은 여러 가지 지만 여성들에게 잘생겨요. 신경 쓸 일이 있거나 생리나 피곤할 때 나는 것들이죠.”

약과 연고를 처방받았다. 4시간마다 바르고 먹어야 한다. 큰일이 터지 것처럼 시간을 지켰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니 진행되지 않고 멈췄다. 이제 좋아질 기미가 보인다.


무슨 일에 신경을 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며칠 전 갑작스레 마음이 지칠 정도로 순간 정신을 쏟았던 일이 생각났다. 남편이 여름 즈음에 몸이 갑자기 아팠다. 그동안의 스트레스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당황스럽고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댔다. 상황이 썩 좋아진 건 없지만 관리하면서 살면 될 거라 여기고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음악을 듣다가 갑자가 두려움이 밀려왔다. 묻어두었던 것들이 살아났다.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지는 상황에 대해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순간 밀려오는 불안에 마음을 붙잡지 못했다. 그렇게 혼자 실컷 울고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그게 원인이었나 보다. 다음날 아침 운동을 하는데 몸이 다른 때와 달리 지쳤다. 그러고 생긴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몸은 내 마음의 거울이었다. 작은 일에도 세심히 보고 크게 생각하는 마음 탓이다. 일상에서 무언가 긍정적이지 않은 일이 생기면 상황보다 심각하게 바라봤다. 그러고 나면 이번처럼 꼭 몸에서 탈이 났다. 관절에 무리가 오거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나 겪을 법한 몸에 피로가 밀려온다. 이럴 때면 일상이 뒤죽박죽이다. 늘 하던 설거지나 집안일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짜증도 늘어난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몸이 내게 말하고 있음이 을. 스트레스가 커질 때도 어딘가 아팠다. 무슨 무슨 질환이라고 여길 정도의 병은 아니었지만 살아가는 일이 불편했던 것은 확실했다. 난 왜 그럴까 하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철체력을 가진 이들을 마냥 부러워했다. 그러다 마음이 나를 살리기 위해 하는 얘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수차례 계속되는 갈등과 어려움을 겪으며 터득한 결과다. 시간으로 따져보니 10년은 족히 걸린 듯하다.


몸의 대화는 결국 마음을 바라보는 일이다. 아마 이 둘은 한 몸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알 것 같지만 도달하기 어려운 게 내 몸과 마음을 아는 일이다. 요즘 애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엄마보다도 네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건 너희들일 거야. 주변의 칭찬이나 어떤 평가보다도 나를 아는 건 나니까.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 부족한지 모를 때 잘 살펴보렴. 나를.”

애들에게 어려울 수 있는 일이지만 자신을 솔직한 모습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일의 답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에서다.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낼 때는 당장 낫기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도 돌입하지만 무엇이 나를 이토록 힘들게 했을까 하고 돌아본다. 그러면 인정하기 싫지만 저 밑바닥에 이유란 녀석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이 이런 상황이 좋기보다는 그 반대이기에 외면하고 싶을 때도 많다. 원인 제공자를 타인으로 세워놓고 화살을 쏘아대거나 비난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정신 차리고 보면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언제나 함께 하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몸의 대화에 귀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다.


입술이 아프고 난 후부터 아침에는 홍삼을 꼭 챙겨 먹는다. 여기에 유산균도 함께 한다. 그동안 어딘가 방치해 둔 건강보조식품이 총동원됐다. 꼭 해야 할 일 같은 집안일도 잠시 뒤로 미룬다. 오늘 큰 애 방을 치웠으면 다음날이 작은아이 방, 그다음이 욕실이다. 조금씩 일하고 나를 아낀다. 유튜브를 통해서 듣고 싶은 음악도 하루 종일 틀어 놓고 홈쇼핑을 보면서 멍도 때린다. 그러다 보면 몸이 편안해지고 마음에도 작은 평화가 찾아온다. 학교 갔다 오는 아이에게도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넨다.

“학교 잘 다녀왔어? 오늘도 애썼네.”

목소리에 사랑이 담기고 힘이 생겼다. 하루의 실천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일상을 살아간다는 건 평범을 거부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어쩔 수 없는 일이 수 없이 벌어진다. 단지 그 상황에서 용기 있고 냉철하며 널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깊은 곳 마음이란 녀석이 마구 들썩이기 시작하면 몸이란 친구가 반응하며 훼방 놓을지 모른다. 설사 그럴지라도 다시 지금처럼 그들이 건네는 말에 집중하며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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