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친구 라디오와 아직도
동거 중입니다

매일 만나도 지겹지 않은 이유

by 오진미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라디오를 켠다. 6시를 살짝 넘기는 시간은 약속한 듯 매일 같은 방송을 듣는다. 전날 벌어졌던 다양한 이슈를 여러 각도로 풀어주니 밥을 준비하면서 듣기에 무리가 없다. 온 가족이 식탁에서 아침을 먹고 각자의 일터로 나간 후 운동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8시 반까지 언제나 라디오는 제 할 말을 쏟아낸다. 언제나 마음에 안 드는 인터뷰가 있으면 다른 채널로 망설임 없이 돌려 버린다.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내보이는 순간 중 하나가 라디오 들을 때다.


라디오와의 인연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수원 일에 항상 바빴던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일을 곧잘 하는 아이였다. 여름을 지나 가을의 끝 무렵 수돗물에 손을 대는 일이 망설여질 때는 아궁이에 불을 때고 물을 데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초등학교 1학년 초겨울이었다. 4시 반을 지나 5시를 달려갈 즈음부터 불을 때기 시작했다. 항아리에 있는 물을 바가지로 솥에 붓는다. 이 과정에서 나뭇가지를 크기별로 적절히 넣으며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했다. 이때 나와 함께 한 동무는 일본 친척이 선물한 라디오였다. 라디오 소리는 부엌의 고요함을 절로 사라지게 했다. 어린아이가 느꼈을 두려움도 온데간데없다.


그때 매일 듣던 프로그램이 있다. 어렴풋하지만 어린이 세상이라는 단어만이 기억난다. 동요는 물론 세계명작소설이나 창작동화를 드라마로 만들어서 들려줬다. 지금도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라는 극이 생생하다. 주인공 제제와 라임 오렌지 나무 밍기뉴가 대화하는 장면에는 마치 내가 그곳에 머무는 것처럼 실감 났었다. 제제의 집은 어떤 모습인지, 오렌지 나무는 어떤지 내 마음대로 그려봤다. 아마 이때가 내 상상력의 절정을 달리지 않았을까.


우리 집 라디오는 신통하게도 TV 프로그램을 소리로 들려 주었다. 아버지는 TV가 시력에 안 좋다는 이유로 집에 들이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야 컬러 TV를 샀을 정도로 철학이 확고했다. 오빠는 이와는 상관없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안경을 썼지만 말이다. 어린이 만화에 목말라 있던 나는 그야말로 라디오가 유일한 탈출구였다. 가끔 큰아버지 집으로 달려가 눈치를 살피며 TV 시청에 몰입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라디오로 만족해야 했다.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를 소리만으로 스토리를 정리해 간 게 한두 편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 라디오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준 최고의 도구였다.


태풍급의 강한 바람이 삼나무 흔드는 소리와 함께 고요한 동네를 휩쓸 때다. 밖은 춥지만 나무로 만든 작은 방석에 앉아 활활 타는 아궁이 불을 감상하는 시간은 마냥 좋았다. 라디오 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안은 TV에 대한 갈증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단지 내 귀에 들리는 소리가 세상의 모든 것처럼 여겼다. 신문 배달 소년이 구독하는 집을 기억하기 위해 대문마다 그려 놓은 표시가 외계인의 것이라고 오해하고 동네가 발칵 뒤집혔던 드라마도 선명하다. 나 역시 그 동네에 정말 외계인이 다녀간 게 아닐까를 고민하며 결말에 관심을 집중했었다. 그때 라디오는 내 선생님이었고 동무였다.


어른이 돼도 라디오는 내 곁을 지켰다. 남편과 3년간 주말부부로 지낼 때였다. 불교방송의 정목 스님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곧잘 들었다. 그 방송은 워킹맘으로 돌도 안된 아기를 아줌마에게 맡기고 일하다 돌아오는 저녁에 유일한 위로였다. 시작 즈음 흘러나오는 시그널 음악에 참 많이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어려움과 더불어 회사 일에 치여 지내는 일상, 아이를 돌봐야 하는 육체적인 피로감이 뒤섞여 엉망진창이었다. 그때마다 스님은 미워하게 되는 여러 대상을 용서하는 게 나를 위한 길임을 강조했었다. 낭랑하면서 힘 있는 목소리에 스님의 일상과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가슴에 콕 박혔다. 남편 역시 이 프로그램을 즐겼다. 버스로는 3~4시간 거리에 떨어져 살고 있었지만 라디오를 통해서 서로가 감정을 나누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저녁을 준비할 때면 어김없이 라디오가 있다. 가끔 유튜브를 통해서 동영상을 시청할 때는 라디오의 맛이 사라진다. 진행자와 게스트가 얘기를 나누며 진행되는 동안 살짝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다시 노트북을 닫고 라디오 플러그를 꽂는다. 이때부터 단어 하나하나가 들린다. 초저녁 역시 다양한 시사 프로그램에 집중한다. 방송사마다 그날의 이슈를 평하기에 바쁘다. 워낙 다양하고 민감한 이슈가 많은 시사 전성시대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아가는데 라디오 만한 게 없다. 손으로 주파수를 맞추는 오리지널 라디오를 만지는 재미가 톡톡하다.


휴대폰 하나로 만나는 세상이다. 자기 전까지 하루 종일 심지어 잠자는 순간에도 거리 두기를 거부한다. 나와는 딴 세상이지만 말이다. 오롯이 소리로만 만나는 라디오 세계가 좋다. 멀티 플레이어가 된다. 귀는 열려있고 몸은 다른 일을 한다. 빨래 개기와 가족들의 식사 준비도 때로는 글 쓰는 시간에도 라디오는 어김없이 나와 함께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리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 갈등이 커질 만도 하련만 이 녀석은 그냥 자기 일만 할 뿐이다. 언젠가 EBS 라디오에서 한참 부모교육에 대한 내용을 다룰 때였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약속한 듯 라디오를 켰다. 누구나 그러하듯 방송을 듣고 나서는 다짐한다.

“맞아 나도 그랬었지. 아이가 학교 갔다 오면 마음을 읽어주고 편안하게 해 줘야지.”

실제로 그리된 날보다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라디오를 듣는 그때만큼은 강한 의지를 가져본다.


오늘 저녁에도 5시면 라디오 볼륨을 높일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하는 동안 세상은 어떻게 돌아갔는지 묻지 않아도 잘 알려준다. 친정엄마 역시 라디오 팬이다. 주파수 맞추기가 어려워 적당한 라디오를 사려고 했지만 어려웠다. 이제 더 이상 가전사에서 시골 할머니가 쓸 편한 라디오는 만들지 않았다. 수요가 따라주지 않으니 그러하겠지만 말이다. 우리 집에 있던 십여 년 전에 나온 엘지 제품을 갖다 드렸다. 전파가 그나마 잘 잡히지만 엄마는 한 가지 방송을 즐겨 듣는다. 가끔 엄마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라디오의 힘이다. 이 친구는 내게 어떤 부담도 주지 않는다. 그저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덩달아 나도 다이어리에 적어둔 오늘의 일을 찾아서 몸을 바지런히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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