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전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by 오진미


공원을 몇 바퀴 돌았다. 손을 어깨 높이로 군인들이 행진하듯 자세를 갖추고 열심히 걸었다. 공원 트랙을 중심으로 다섯 번을 돌면 30분이 지난다. 마음먹고 한 시간을 움직이면 몸이 그만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집으로 돌아와 대충 정리를 마치면 그때부터 내 시간이다. ‘오늘은 뭘 하지’ ‘ 커피 마시자고 전화 오는 이는 없을까’ ‘내가 먼저 커피숍 가자고 연락해 볼까’ 몇 분 사이에 내 마음이 몇 번을 널뛰기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외롭다고 여겼다. 함께 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만이 내게 즐거움을 주는 것 같았다.


막내가 어린이집을 가고 유치원을 다니면서 심해졌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와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 그러다 자동적으로 티브이 리모컨을 들고서 채널 쇼핑에 나선다.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멍 때리고 드라마에 빠진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무언가를 찾는다. 그러던 중 동네 언니의 전화다.

“뭐해? 우리 오늘 날씨도 좋은데 차 마시러 갈까?”

“네 언니. 좋죠. 그럼 좀 있다 만나요.”

절로 미소가 흐른다. 옷을 챙겨 입고 립스틱을 바르고 집을 나선다.


차를 타고 산고 강이 흐르는 경치 좋은 곳으로 향한다. 마음은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들떴다.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를 시키고 그동안 쌓인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언제나 비슷한 대화다. 누구네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돈을 벌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제자리를 맴도는 것들이지만 진지하고 심각하다. 간혹 그간의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면 위로하며 잘될 거라고 용기를 주기 위해 애쓴다. 한두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이상하게 몸이 지쳐온다. 에너지를 얻고 와야 하는데 다시 기운이 빠진다.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나?’ 혼자 생각에 잠기다 집안일을 시작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언제나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 밖으로 마음을 돌리려 했다.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외향적인 성격도 아닌 까닭에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어쩌다 가끔이었다. 내 생활에 집중하는 일이 힘들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에 두고 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끔은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가만히 침대에 누웠다. 낮잠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멀뚱멀뚱 허공을 바라봤다. 무엇이든 일을 해야지 하는 고민이 계속되었다.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의미를 스스로 평가절하했었다. 기질적으로 과업 지향적인 스타일을 타고났지만 이럴 땐 내게 큰 장애물이 되었다. 난 빛나는 존재이고 싶어 했다. 문제는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니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다. 언제나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 우울증인가? 자꾸 눈물이 나네.”

“언니가 힘들어서 그래. 요즘 뭔 일 있어?”

“아니 별일 없는데. 매일 그렇지 뭐. 애들 학교 가고 난 집 치우고.”

잠시 머뭇거렸다. 별일 없는 게 아니고 내 마음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그냥 내가 뭐하나 싶어.”

“언니는 애들 잘 돌보고 주부로서 대단한 일을 하고 있잖아.”

그러면서 나를 잘 살펴보라고 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면 보일 거라며 한참이나 얘기를 들어주었다. 전화를 끊고서는 왠지 홀가분해졌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안쓰러워졌다.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언니가 아마 우리 동네서 가장 편한 아줌마라고 우리끼리 언제 말했어.”

이 말을 들을 땐 그냥 웃고 넘겼다. 집으로 와서 생각할수록 납득하기 어려웠다. 생각은 모두의 자유라며 흘려버렸지만 불편한 마음이 오래 남았다. 편하다는 기준이 무얼까 하고 고민하다 멈췄다.


그즈음에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구청에서 하는 글쓰기 수업인데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시간이 되면 들어보라고 했다. 벌써 2년이나 흘렀다. 봄에 매주 두 시간씩 3개월간 강의를 들었다. 합평회도 열었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이들이 모였으니 나름 진지했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기분 좋은 변화였다. 몇 달간 오랜만에 글을 썼다. 매주 과제가 주어지니 꾸역꾸역 쓰게 됐다. 어릴 적 습관처럼 숙제라는 게 사람을 움직이게 했다. 그냥 한번 써보라고 했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일이었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까지 모두가 한편 이상의 글을 쓰게 했다. 아이가 학교로 간 후에는 자연스레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기분이 묘했다. 한 편의 여행 에세이와 자유주제의 글 두 개를 편을 썼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일상에서 멀어져 갔다.

9월 초였다. 잊고 있던 단톡 방에 메시지가 왔다. 10월부터 ‘저자는 어떻게 탄생되는가’ 강의가 작은 책방에서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망설이다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4시 결코 단순하지 않은 시간이다. 가족들과 휴일 나들이를 가거나 집에서 빈둥거리다 밖으로 나가는 일이 귀찮아질 때다. 규칙적으로 할 일을 찾고 나를 위해서 조금씩 움직이기로 했다. 첫 시간에 선생님이 물었다.

“왜 글을 쓰고 싶어요?”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어서요. 여러 고민 속에서 헤매다가도 노트북에 손을 올려놓는 순간 잊게 되거든요. 그래서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젠 누구의 전화도 만남도 기다리지 않는다. 벌써 몇 달이 지나간다. 오롯이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어릴 적 스쳤던 추억부터 문득 떠오르는 얘기들을 정리해 가니 내가 걸어온 일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막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부지런히 움직인다. 집안일은 가능한 순서를 정해서 무리하지 않는다. 습관이 될 때까지 내 일에만 집중해 보기로 했다. 그러면 내게도 세찬 비바람에도 덜 흔들리는 힘이 생겨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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