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리고 사는 일상의 징표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기로 나와 약속했다. 한여름이었다. 나를 붙잡아 줄 무엇이 필요했다. 걱정과 불안에 떨고 있는 내가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걸 고민했다. 그러다 그동안 써야겠다고 메모해둔 노트를 꺼내 들었다. 어린 시절 얘기부터 내가 좋아하는 식물에 관한 것까지 기록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브런치를 시작했다.
아침 8시 40분이면 식탁 위에 노트북을 켰다.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은 수업을 위해 컴퓨터나 티브이 앞에 앉았다. 우선 전기 포트에 물을 끓여 커피 한 잔을 마련해 놓는다. 설거지를 끝내고 주방을 대충 치운 다음 마시는 커피는 휴식이었다. 뜨거운 그것이 목을 넘어가는 순간 오늘 쓸 것들을 그려본다. 기분이나 날씨, 유독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우선 그것을 담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오롯이 나열했다. ‘어떡하지’하는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처음으로 저녁 늦게 한 편의 글을 완성시켰을 때 뭔지 모를 기쁨이 있었다. 내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선보이는 일이 두려웠다.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시간을 잘 버텨가야 했다.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이런 마음을 잘 알아준 게 글이었다. 엉성하고 부족하지만 한 편을 완성하는 시간은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평화가 찾아왔다.
애들이 자꾸 기웃거린다.
“엄마 뭐해?”
“엄마 글 써.”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난다. 아이들도 엄마에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말을 언제 걸어야 할 지도 감으로 배운다. 부지런히 자판을 두들기는 시간에는 예민해져 있으니 한두 시간이 흐른 후에야 좋다는 것도 자연스레 터득했다. 시작했으니 결말은 항상 맺기로 다짐했었다.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것일지라도 끝까지 쓰고 싶은 것을 놓지 않기로 했다. 잘 안될 때는 혼자 마음이 불편하고, 술술 넘어갈 때는 절로 기분이 좋았다. 현실의 문제는 바뀌지 않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힘이 조금씩 싹텄다.
‘나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하는 자신감도 살짝 생겨났다. 일주일을 보냈다. 이주 삼주를 지나니 안 쓰면 마음이 이상했다. 의무적으로 책상에 앉았고 썼다. 그러다 보니 50편이 조금 넘는 글을 발행했다. 마냥 몰입하며 건강하게 하루를 보낼 거라는 믿음을 줬던 글쓰기가 요즘 다시 흔들린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때로는 글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다. 마음도 갈대처럼 흔들리고 그동안 잘 지켜왔다고 생각했던 약속을 저버리는 날이 반복된다. 내가 못마땅하다. 그러니 일상도 자꾸 어긋난다. 애들에게 화도 잦아지고 짜증도 늘었다.
며칠 전 올해가 가기 전에 100편의 글을 써보겠다고 온 가족들에게 선포했다. 나를 채찍질하기 위한 자발적인 떠벌리기였다. 진심으로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랐다. 10월이 마무리될 즈음부터 부지런함은 사라졌다. 1일 1 글이라는 내 목표는 차츰 희미해져 간다. 글을 쓰는 작업이 그동안 내게 어떤 의미였나를 돌아보았다. 집중하고 몰입할 때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무얼 써야 할지 모른다는 건 그동안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그리는 일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부터가 진짜 나를 펼쳐 보일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일 수도 있다.
내가 뭔가를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건 쓰는 일이다. 타인의 삶을 바라볼 때도 다름을 인정하고 바라볼 수 있는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그저 남의 떡이 크게 보이던 시절에서 벗어나 성장해 가는 느낌이다. 매일매일 가다 보면 무엇이든 보이지 않을까. 초등학생 시절 동네 초입에서 집까지 걸어갈 때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공포가 극에 달해 무조건 달렸다. 그러다 보면 긴 골목 우리 집에 도착했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글쓰기 작업도 처음에는 희미한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떠오르는 것들을 나열하다 보면 단어가 문장이 되고 그래도 글 한편이 완성된다. 어스름이 젖어드니 하루가 밝음에서 어둠으로 향한다. 동네 화원에 오랜만에 다녀오자마자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 이 기분이었구나.’ 편안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완주할 수 있을지 누구도 모를 일이다. 그냥 써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