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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Oct 16. 2020

감자 두 개로 만든 수프지만 괜찮아

토요일 아침엔 빵을 먹는다

  

 느려야 제맛이다. 간단히 대충 먹어도 좋다. 매일 먹는 밥보다는 빵에 손이 간다. 토요일 아침 풍경은 잔잔히 흐르는 음악이다.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일어났다. 매일 차리는 식탁은 내가 만드는 즉석 이벤트 같다. 기분에 따라서 메뉴의 결이 다르다. 다른 이들은 모르는 나만의 ‘기분 한 상’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라디오를 켰다. 멍하니 앉았다가 뭘 먹을지 생각했다. 며칠 전부터 꽤 쌀쌀해졌다. 눈 뜨면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집안으로 들이는 일에 열심이었는데 주저하게 된다. 잠깐 머뭇거리다 마늘이며 양파를 놓아둔 야채 박스에 눈이 간다. 까만 흙이 잔뜩 묻어 있기에 무엇인지도 알아보기 힘든 감자 두 개가 있다. 따뜻한 국물이 어울리는 날씨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감자 수프가 제격이었다. 삶은 계란과 추석 전 만들어 둔 복숭아 잼을 곁들인 토스트를 아침으로 정했다.     


 감자를 물에 씻었다. 손에 힘을 줄수록 얼굴을 드러내는 감자가 귀엽다. 필러로 껍질을 벗기고 엉성하게 썰었다. 냄비에 물 조금과 굵은 천일염을 놓고 한 10분을 삶았다. 단맛을 추가할 양파도 곁들이기로 했다. 양파를 채 썰고 팬에 살짝 올리브유를 두르고 볶기 시작했다. 버터가 있으면 고소함이 배가 되지만 냉동실 조각 버터를 보관하는 통이 비었다. 언제나 집에 있는 것만으로 무리하지 않는 게 내 요리의 핵심이다. 오늘도 비켜가지 않았다. 버터가 없어도 괜찮다.      


 양파의 달큼한 향이 퍼진다. 갈색으로 변하면서 단맛이 올라온다. 젓가락으로 감자를 눌러봤더니 잘 들어간다. 다 익었다는 신호다. 감자에 남아 있는 물을 조금 덜어내고 양파를 넣었다. 여기에 우유를 붓고 블랜더로 휘리릭 갈아주면 준비 끝이다. 약한 불로 보글보글 끓이다가 소금을 넣으면 수프 완성이다.   

 

 이제 달걀 몇 개를 꺼내어 삶기로 했다. 반숙과 완숙을 좋아하는 가족의 취향대로 중간지점을 택했다. 9.5분을 삶았다. 햄도 칼집을 넣어 한번 구웠다. 맨 마지막 주자는 빵이다. 일찍 구우면 바삭한 식감이 사라지기 때문에 모든 준비가 다 끝났을 무렵이 가장 적당한 때다. 은은한 갈색이 비출 정도로 구웠다. 딱 먹기 좋은 상태다. 크림치즈와 잼, 슬라이스 된 사과를 접시에 담았다. 한여름 폭우를 뚫고 우리를 찾아온 튼튼한 복숭아가 잼이 되어 우리를 맞는다. 분홍과 보라의 묘한 색을 내는 잼이다.   

  

 물난리가 끝나고 과일이 금값이던 시절이었다. 큰 맘먹고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복숭아 한 상자를 샀다. 다 먹은 줄 알았던 복숭아가 냉장고 야채 통에서 잠자고 있었다. 너무 시간이 흐른 탓에 수분은 빠져 쭈글쭈글해졌다. 회생시키기에 돌입했다. 잼으로 만들기로 했다. 껍질을 벗기고 적당한 크기로 썬 다음 일대일 비율로 설탕을 넣고 버무리고 나면 기다림의 시간이다. 아주 나지막이 읊조리는 노랫말같이 냄비 안에서 복숭아가 설탕을 만나 어우러지는 소리를 즐겨야 맛있는 잼이 탄생한다. 마음이 급하다고 센 불에서 하면 딱딱해지고 깊은 맛을 내기 어렵다. 설탕을 너무 많이 넣어도 과일 본래의 맛을 잃게 된다. 재료의 성질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지켜봐야 하는 일이다. 처음에만 좀 신경을 써주고 약한 불로 가끔 저어주면 된다. 첫 단추를 잘 꿰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이치와 맞닿아 있다. 그렇게 한 한 시간 남짓 걸려 완성된 작품이었다.    


 휴일이면 언제나 약속하듯 일찍 일어나 TV 앞에서 빠져 있던 아이들이 슬슬 배가 고파 오는 모양이다. 빵 굽는 냄새에 큰 아이가 다가온다.

“엄마 오늘 아침은 뭐야?”

“응 빵 하고 감자수프.”

“맛있겠다. 지금 먹을 수 있어?”

다시 바빠진다. 빨리 상을 차렸다. 앞접시를 놓고 식탁에 오를 음식들을 담아냈다. 수프를 한 스푼 뜨고는 맛있다고 칭찬일색이다. 큰아이는 수프에 찍어 먹는 바게트가 생각난다고 했다. 각자가 취향껏 샌드위치를 만들거나 잼을 발라 먹는다. 서둘러 가야 할 곳이 없으니 작은 평화가 찾아온다. 빵을 먹는 아침은 이상하게 편하다. 국을 만들고 반찬을 만드는 복잡함이 없기에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빵을 먹는 시간은 여러 얘기가 오간다. 휴일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항상 양으로 승부하는 남편에게 핀잔을 주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얘기에 주거니 받거니 한다. 소소한 일상을 아이들과 함께 나눈다.  

   

 샐러드가 빠진 식탁이어서 허전했다. 알고 있었지만 생략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있는 몇 가지만 씻고 접시에 펼쳐 놓으면 될 일이었지만 하기 싫은 날이었다. 내 맘대로 식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초록이 있어야 하는데  황량해 보인다. 잘 먹었다는 징표처럼 빈그릇만 남았다. 그것으로 만족이다. 지극한 수고로움은 꼭 탈이 나기에 밥 먹는 일에도 적당함을 택했다. 다음에는 막내가 좋아하는 단호박 수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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