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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Oct 23. 2020

나와 감자 고구마 이야기


          

 둘은 쿨한 친구 사이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따뜻하면서도 부드럽고 담백하다. 여기에 입에 감기는 달콤함은 시간이 갈수록 빠져들게 한다. 감자와 고구마를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한 손으로 잡기에는 커 보이는 엄마의 작품 고구마와 흙이 잔뜩 묻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깜장 고양이가 연상되는 감자다. 감자는 장마가 깊어지기 전에 고구마는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무겁게 걸쳤던 흙이라는 옷을 벗어내고 세상에 얼굴을 내민다. 감자는 내 어린 시절에 머물렀고 고구마는 어른이 되어 엄마로 살아갈 즈음 내 곁으로 다가왔다.   

# 감자

초등 2학년이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TV를 보고 있는데 밭에 갔던 엄마가 급히 부른다.

“햇볕이 이렇게 쨍쨍 인 날은 감자 싹이 다 타들어가는데 여기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으면 어떡하니?”

헐레벌떡 달려와 호통치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었다. 웬만해선 나무라지 않던 엄마였다. 마음이 얼마나 급했는지 고사리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절박했었나 보다. 감자가 잘 자라도록 멀칭 작업을 했었다. 싹이 막 자라나기 시작할 무렵 따뜻하다 못해 더워가는 날씨는 이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한시라도 빨리 호미를 들고 숨 쉴 수 있도록 비닐에 구멍을 내줘야 했다. 그 길로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감자밭으로 갔다. 엉성한 손길이지만 긴 고랑을 다니며 감자 숨통 틔기에 나섰다. 재미있는 만화에 푹 빠져있던 시간이었다. 엄마의 불호령이 어찌나 따끔했는지 감자를 떠올리면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이 선명히 그려진다.     


 집에 있는 창고 구석에는 항상 감자가 있었다. 가을에 심을 씨감자며 반찬거리로 남겨둔 알이 작은 것까지 터줏대감처럼 언제나 자리를 지켰다. 종종 라면 심부름을 시키며 윽박지르던 중학생 오빠는 가끔 감자로 나름의 실력을 뽐냈다. 감자를 반달 썰기 하고 엄마표 고추장에 간장 조금과 계란 한 개를 풀어놓은 빨간 국물의 찌개다. 어린 입맛에 살짝 맵기도 했지만 자꾸 중독되는 맛이었다. 별 반찬 없이도 밥 한 그릇 뚝딱하고 비울 정도로 밥도둑이었다. 오빠의 자상함이 아련히 살아나는 요리다. 오빠와 어린 시절 얘기를 나누다 감자찌개에 대한 추억을 꺼냈다. 

“오빠 정말 그때 맛있었는데. 아마 그때부터 오빠가 요리에 소질이 있었나 봐.”

오빠가 갑자기 의미심장한 미소를 건넨다.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있잖아. 그때 거기에 뭔가 특별한 걸 내가 넣었지. 바로 라면스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순수한 오빠의 손맛이라고 여겼던 요리가 라면의 핵심인 수프에서 나왔다니 말이다. 어찌 됐든 추운 날 호호 불면서 오빠 표 찌개가 배고픔을 달래 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나름 맛을 적절히 만들어 낼 줄 알았던 오빠의 순간 재치에 놀랄 뿐이지만.    

 

 감자는 엄마의 샐러드로 기억된다. 엄마는 초여름이면 폭신한 크림이 연상되는 이 요리를 종종 해주었다. 밭에서 나온 감자를 흐르는 물에 팍팍 씻어서 말끔한 얼굴로 변신시킨다. 솥에 적당히 물을 넣고 감자를 푹 삶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포슬포슬 한 감자가 탄생했다. 그 뜨거운 것을 요령껏 양푼에 담아내고 적당히 식힌 다음 깨끗한 면포에 넣고 손으로 꼭 눌러준다.

“이러면 감자가 더 부드럽고 먹기 좋은 맛이 되고 한단다. 손맛이 더해졌으니 맛있겠지.”

절로 껍질 사이로 보여주는 노란 속살에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소금이나 설탕에 적당히 찍어서 먹기도 하지만 그다음 후속타가 준비 중이다. 껍질을 벗기고 덩어리를 으깨어 준다. 여기에 뒷밭에서 나는 부추와 알싸한 양파를 조금 채 썰어 넣어준다. 마지막으로 마요네즈와 설탕을 조금 넣으면 소박하면서도 멋스러운 여름의 맛이 완성된다. 큰 숟가락으로 한입씩 떠먹으면 달콤 담백한 맛이 자꾸 당긴다. 지금도 햇감자가 나올 무렵이면 꼭 한 번씩은 만들어 먹는다. 고등학생 시절 엄마는 시험기간이면 어김없이 막차를 타고 올라와 도시락을 싸주었다.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때였다. 정신없이 시험을 보고 점심을 먹기 위해 반찬 뚜껑을 여는 순간 퍼졌던 진한 부추 향과 귀엽게 담긴 감자 샐러드가 지금도 아른거린다.   

  

#고구마

 고구마는 30대 중반부터 사랑에 빠졌나 보다. 이전에는 가을이면 가끔 한 봉지 사서 쪄 먹는 게 전부였다. 워킹맘에서 전업주부로 환경이 급변하면서 여유가 생겼다. 주위를 둘러볼 시간이 생기면서 고구마에 주목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하루의 전부가 되던 시절이었다. 집에만 있는 것도 지루하고 가끔 동네 중심으로 나갔다. 가게들이 즐비한 도로변 한 편에 할머니들이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직접 키운 고구마를 들고 나왔다. 반팔 티셔츠에 얇은 카디건이나 점퍼를 걸쳐 입을 늦여름이었다. 흙이 군데군데 묻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깨끗하게 세수한 말간 얼굴로 손님을 맞았다. 여름 강한 햇빛과 그칠 줄 모르는 비와 고군분투한 녀석들이 귀여웠다.    

   갓 캔 고구마는 쪄서 먹는 게 제격이다. 뻑뻑한 밤 고구마는 입안에 머무는 동안 온갖 고민을 날려 버린다. 적당한 달콤함과 부드러움에 우유 한 모금을 마시면 최고의 하모니를 이룬다. 그러다 쌀쌀한 바람이 불고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군고구마가 어울린다. 적당히 까맣게 탄 고구마는 고소함을 몇 배로 끌어올려준다. 늙은 호박의 속살을 닮은 호박 고구마를 반으로 가르면 손이 꽁꽁 얼 듯한 추위는 빛깔만으로 사라지게 한다.     

 “밭에 조금 심었는데 오늘 보니 고구마가 호박만 하게 컸더라 보내줄까.”

“응 엄마 우리 고구마 정말 좋아하잖아.”

밭에 다녀온 엄마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밝다. 귀찮아도 힘들어도 몸을 움직였더니 흙은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예상외 큰 수확의 기쁨을 주었나 보다. 

“농부는 부지런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먹을 게 없잖아. 언제까지 이렇게 농사지을지 모르겠지만……”

“알지. 엄마 그러니까 한 백 살까지 살아야 해. 그래야 내가 맛난 거 매일 먹을 수 있잖아.”

언제나 그러하듯 엄마의 레퍼토리가 시작됐다. 혼자 일하는 엄마의 수고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다음날 도착한 택배 상자에는 고구마가 가득이다. 섬 바람을 맞고 자란 고구마는 튼튼했고 묘한 자색의 빛깔로 고향의 향기를 전했다.     


 베란다 구석에 고구마 상자를 두었다. 빈 쌀독을 채웠을 때처럼 넉넉함에 여유가 절로 생긴다. 한동안 애들 간식은 걱정이 없겠다. 고구마의 무한 변신만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고구마를 슬라이스 해서 칩을 만들어 먹었다. 올리브유를 조금 바른 다음 에어프라이어로 6분 정도를 구웠다. 상상했던 바삭함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만족이다. 다시 피자 치즈를 뿌리고 고구마 피자를 만들었다. 속전속결로 끝난다. 더 첨가할 것 없이 오롯이 재료의 본연의 성질로도 모자라지 않는 성공작이었다. 그 후로 나를 기다리는 건 고구마가 들어가 식빵 푸딩이다. 당 충전은 물론 우울한 기분을 날려주는 힐링 메뉴다. 우선 고구마를 조각내서 찐다. 식빵 두 조각을 적당히 자른다. 그릇에 식빵과 고구마를 적당히 배치하고 우유에 계란 하나를 풀어 넣고 설탕을 조금 넣은 다음 그릇에 잘 뿌려 준 다음 한 20분 정도 오븐에 구우면 끝이다. 숟가락으로 푹 떠먹는 순간이 바로 행복이다.  

  감자와 고구마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균형’이라는 단어가 스친다. 이 둘은 어느 한 곳에 치우침이 없다. 본래 모습으로도 여러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 준다. 짜거나 싱겁지 않다. 그 자체로 충분하다. 줄기 식물인 감자 뿌리 식물인 고구마, 그 태생이 어떠한들 식탁에서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돌아오는 토요일 아침에는 고구마 밥을 지어야겠다. 고구마의 힘을 빌려 가족들에게 달콤한 주말을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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